"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준다"고 요란한 선전광고를 했던 한 오페라. 환상적인 무대를 느끼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환상에 빠져야 했다. 눈을 뜨는 순간 엉성한 무대장치를 봐줘야 했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다른 오페라.어울리지 않는 뚱뚱한 주연 성악가들의 어설픈 연기가 심각한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오페라 관객들이 느끼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알고있는 우리나라 오페라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문제가 뭐야?"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연출 때문이다. 성악가들의 기량도 좋고 오케스트라 연주도 나무랄 수준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극적인 재미를 부여하는 연출이 부재함으로써 오페라로서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연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음악대학이나 공연현장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에서 오페라 연출을 배울 수 있는 정규과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오페라과가 유일하다. 그것도 대학원 과정에만 있다. 인식이 낮아서 올해 입시에는 한 명을 뽑는데 한 명이 지원했다. 오페라 연출은 나이든 성악가가 하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국내 대학에 오페라 연출을 담당하는 전임교수는 전무한 실정이고 자리도 없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는 졸업에 필요한 130학점 중에서 오페라에 관련된 과목은 12학점. 노래 배우기에 바빠 연기나 대본에 관한 이해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문다. 연출가들이 출강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 때문에 "오페라 배우려면 유학가야 한다고 생각들 하고 있다"고 서울대 성악과에재학중인 최모(25)씨는 전한다.
현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연출자가 상근으로 있는 단체는 국립, 사립 오페라단을 막론하고 전혀 없다. 연출자가 뜻대로 무대를 이끌어나가기도 힘들다. 원래 오페라 연출자는 음악감독과 동등하게 출연 성악가의 선정부터 무대장치 조명 연기 등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가수들의 동선만 꾸며주는 사람이 된다. 조연출이 배울 것도 없고 배워도 연출자로 성공하기 힘들다. 대우도 열악해 A급 연출자가 작품 당 1,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연출에게는 작품을 구상할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21∼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토스카'는 작품이 공연되기 열흘 전에야 연습이 시작될 수 있었다. 좋은 주연가수를 쓴 덕분에 공연은 비교적 성공리에 끝났지만 연출은 미흡한 점이 많았다.
특히 3막에서 주인공인 카바라도시가 총살당하는 장면의 어색함이나 추격병들에게 성벽 위로 몰린 여주인공 토스카가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의 심리상태 묘사가 미흡했던 점은 작품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출의 한계를 감추려고 7∼1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리골레토'는 연출과 무대장치를 완전히 수입해서 무난한 공연을 펼쳤지만, 국내 오페라 발전에 기여한 바는 미미하다.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마술피리'는 옹색한 무대 활용으로 음악만 화제가 되었다.
오페라 연출자인 이소영(39)씨는 "오페라 연출은 음악과 연극을 모두 알고 작품을 완전히 소화해야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며 "연출자가 배역 하나 제대로 캐스팅하지 못하는 현상황에서는 한 달만에도 연출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국고지원금으로 오페라가 양산되다보니 오히려 졸속으로 제작되는 현실이라는 것.
이씨는 대안으로 조명, 무대미술, 무대감독, 조연출, 연출이 한 팀이 되어 장기간 작업을 할 수 있는 '프로덕션' 개념이라도 조속히 정착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프랑코 제피렐리처럼 영화 오페라 뮤지컬을 두루 만들 수 있는 감독을 키울 수 있는 종합연출학과를 국내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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