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마케팅의 변화가 가장 심했던 곳이 정유업계다. 정유업계는 브랜드, TV광고, 제휴카드, 포인트 적립, 쿠폰제 등 다양한 마케팅으로 사활을 건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 휘발유 시장은 마케팅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변화를 주도한 곳이 LG정유이다.LG정유가 95년 1월 휘발유 브랜드인 테크론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테크론이 선보일 당시 소비자들이나 경쟁사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까지 소비자들의 휘발유에 대한 관심은 엔진의 이상연소 억제를 나타내는 수치인 옥탄가. 당시 옥탄가 논쟁이 휘발유의 옥탄가를 95이상으로 끌어 올리면서 국가적 자원낭비도 심각해졌다. 이 시기에 등장한 테크론은 소비자 관심을 휘발유의 청정력, 엔진세정 능력으로 바꿔 놓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테크론은 다양한 기록을 세우며 업계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우선 눈으로 직접 평가할 수 없는 휘발유에 처음으로 브랜드를 도입해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기름에 무슨 브랜드냐'는 경쟁사들의 냉소적인 반응은 1년을 넘지 못했다. 테크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들도 휘발유에 브랜드를 달고, 청정제를 넣은 휘발유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테크론 출시 1년만인 95년 10월 SK는 '엔크린', 에쓰-오일은 '슈퍼그린',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는 'E-MAX'란 휘발유 브랜드를 출시하며 따라왔다.
테크론의 브랜드마케팅은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시장점유율 1%포인트를 올리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휘발유시장에서 LG정유의 점유율은 95년 2%포인트 높아졌다. 휘발유 매출은 250억원 증가하고, 시장점유율은 32%로 정유업계 수위 업체인 SK의 36%을 바짝 추격했다.
LG의 선제공격에 위협을 느낀 다른 정유업체들도 파격적인 마케팅전략으로 맞대응하면서 업체간 마케팅경쟁은 불붙기 시작했다. LG가 탤런트 이승연씨가 단독 출연한 CF를 이씨와 이재룡씨의 투톱 시스템으로 바꾸자, 엔크린도 박중훈-이경영씨로 맞불을 놓았다. 한화에너지는 미국 영화배우 샤론 스톤을 내세워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라는 과감한 카피를 등장시켰다. 현대정유는 기름이 아닌 주유소에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도입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4년이 지난 99년 LG정유는 제2의 시도에 나선다. 당시 테크론은 CF 차(車) 시리즈와 유머광고가 성공한 엔크린에 브랜드 인지도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었다. SK 엔크린의 추격은 역시 무서웠다. SK는 청정, 연비개선, 세정기능을 갖춘 엔크린으로 고품질 휘발유 이미지를 굳히면서 당시 경쟁사들의 저가정책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유가자유화 원년인 97년부터 2001년까지 SK의 시장점유율은 부동의 1위인 37%대를 유지했다.
LG정유로선 이를 추격하는 한편 테크론이 미국 쉐브론사의 첨가제 이름이란 한계를 넘기 위해서도 새로운 브랜드 도입이 절실해졌다. LG정유는 당시 전방위 경영혁신 활동인 6시그마가 추진되는 시점을 고려해 마케팅을 무결점에 맞췄고, 브랜드도 '시그마6(SIGMA6)'로 정했다. 허동수 대표는 당시 브랜드 위원장을 직접 맡아 심사를 주도했다.
브랜드로서의 시그마6는 생산에서 최종 고객까지 모든 단계의 서비스에 6시그마 정신이 깃들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또 테크론보다 품질면에서 한단계 향상된 기능을 갖춘 휘발유 시그마6는 LG정유 중앙기술연구소가 쉐브론과 공동으로 개발한 고순도 엔진 청정기능 첨가제인 'OGA-062'를 사용했다.
LG정유측 설명에 따르면 시그마6는 차량의 출력, 연비, 수명, 주행 성능을 향상시키고, 유해가스 생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시그마6는 이렇게 해서 같은 해 10월 바다만 다니던 유조선이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도발적인 광고를 시작으로 소비자들에게 처음 알려진다.
이후 시그마6는 보너스 카드와 연계한 맞춤서비스, 전략적 제휴를 통한 공동 마케팅, 교통캠페인 등을 전개하면서 이미지를 높여나간다.
고객관계관리(CRM)를 기반으로 해 고객 로열티를 높이고, 주유소내 경정비 프랜차이즈인 오토오아시스, 병설 편의점 조이마트를 개점하는 등 시그마6의 브랜드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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