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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열기 '도미노'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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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 대치동초등 3년생인 현재는 영어학원에서 주 3회, 원어민 개인교사에게 주 1회 과외를 받는다. 유학준비반으로 유명한 이 영어학원의 수강생들은 거의 현재처럼 아기때부터 영어동화책과 영어비디오를 접해온데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와 모국어 구사 수준이 거의비슷하다. 현재 엄마는 내년부터 읽기와 쓰기에 집중하고 5학년이 되면 토플 준비반에 집어넣을 예정이다.

수학경시대회 입상경력이 대학 진학 때 유리하기 때문에 수학은 특별히신경을 쓰는 과목이다. 학원의 선행학습 덕분에 현재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한 학년 정도 앞선 내용을 배우고 있다. 그래도 지난 경시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현재 엄마는 요즘 다른 집처럼 고액개인과외를 시킬 까 고민중이다.

예ㆍ체능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음악의 경우 유명 오페라단 단원에게 성악을, 명문 음대 졸업생에게서 피아노를 각각 지도받고 있다. 체육은 연회비가 200만~300만원인 싸이더스리틀즈에 가입, 승마 스키 골프등을 배운다.

어려서부터 이중 언어교육을 받은 현재는 국어에 자신이 없다. 때문에 별도로 글짓기 학원에 다닌다. 논술팀ㆍ사고력팀으로 나눠 운영되는 이 학원은 대치동에서 소문난 학원중의 하나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현재도 이 동네 다른 아이들처럼 호주로 어학연수를 갈 예정이다.

#양천구 목동

목동6단지에 위치한 모 유명유치원을 졸업한 재훈은 초등 입학을 앞두고 13단지로 이사했다. 초등생 대상의 학원이나 교육센터 등 교육환경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CBS영재원에 다니고, 피아노및 태권도학원에도 나간다.

유치원에서부터 배우고 있는 가베는 초등 수학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개인 수업을 계속 받고 있다. 가베교사는 수준이 들쭉날쭉이어서 재훈 엄마가 인터넷을 뒤져 특별히 유명교사를 섭외했다.

# 송파구 오금동

초등 2년생인 하나는 주2회 영어학원과 주 1회 수학학원에 가고, 미술 피아노를 배운다. 학습지는 영어 수학 국어 3과목을하고 있다. 학습지를 따로 하는 것은 주 1, 2회 받는 학원수업을 보충하기위해서다.

가락동에 위치한 모 수학학원은 손가락으로 곱셈 나눗셈을 가르치는 등색다른 학습법으로 유명하다. 몇 달을 기다려야 겨우 들어 갈 수 있다는이 학원에는 내년 예약도 모두 끝난 상태. 미술학원도 매일 가는 일반학원에서 최근 주1회 프로젝트 수업을 실시하는 다른 미술학원으로 바꿨다. ‘수업방식이 좋다’는 이웃 엄마의 귀띔을 받고서다.

학원까지 셔틀버스에 태워보내는 대신 굳이 승용차로 실어 나르는 이유는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엄마끼리 모여 앉아 나누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보약은 어느 한의원에서 지어야 효과가 있다’거나 ‘모 학원은 모강사가 실력이 좋다’는 정보 등 아이를 기다리며 나누는 얘기는 인터넷을아무리 뒤져도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노원구 월계동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훈(초1)이는 학교가 끝나면 근처 어린이집이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에 간다.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숙제를 마치면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읽으며 논다. 어린이집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태권도를 배우러 가는 것이 사교육의 전부.

지난 달부터는 영어 학습지를 시작했다. 글짓기 프로그램으로 좋다는 모학습지 회사에 신청을 했더니 ‘그 동네는 신청자가 적어 교사를 파견하지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저녁이면 하품을 참아가며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엄마는 “요즘 유행한다는 가베를 최근에야 알았다”며 다소 초조한 기색을 보인다.

■새 학습법·교구, 대치동서 시작 목동·송파거쳐 수도권으로

국내 사교육 현황은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시차를 두고 사방으로 물결이 퍼져가는 동심원 구조를 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학습법, 교구가 번져가는 이 동심원 구조의 중심은 단연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다. 대치동을 교육특구로 꼽는다면 강서구 목동, 성남구 분당 정도는 1등급, 송파구 오금동ㆍ가락동과 경기 과천 등지는 2등급에 해당된다. 서울 상계동과경기 일산도 교육환경이 뒤지지않는 지역으로 꼽힌다.

사교육의 도미노현상은 서울에 국한돼 있지 않다. ‘헬로 맘 하이 베이비’의 저자로, 유아영어 전문강사인 서현주씨는 “2년여 전 처음으로 대치동과 분당에서 유아영어 강의 의뢰가 들어오더니 지난 해에는 목동 일산등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다. 이제는 전국에서 관심을 보인다”고 말한다.

가베가 전국으로 번졌다면, 오르다가 서울 전역으로, 영재교육원은 강남등지에 전파된 상태.

사교육 열풍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다르다. 대치동에서 소문난 학원들은 ECC영어학원이나 왕수학 등 전국에 체인을 가진 대기업형 학원이아니다. 이 지역에서 단독으로 문을 열어 성공하면 다른 지역에 지점을 여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치동은 최신 교육법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분당과 목동에는 이름난 학원들은 대거 들어서 있다. 과천과 상계동도 초등생 인구가 많아 비교적 학원들이 충실한 지역이다. 이 지역 부모들은 교육에 관심도 높고 수준도 고르다. 단독으로 과외를 시키기 보다 팀을 짜서교사를 부르는 등 알뜰하게 사교육을 하는 편이다. 엄마들의 열성이 대단하기 때문에 학습지 교사들은 이 지역에 나갈 때면 자연히 긴장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의식수준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교육열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지역별 동심원의 내용과 크기, 밀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보의 차별화’다. 교육과 관련한 생생한 정보가 그룹 안에서 맴돈다.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한 공개된 정보가 아니라, 엄마들의 경험을 통해검증된 ‘사적인 정보’다. 교육환경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하는 사정 속에는 ‘무리에 끼지 않으면 얻어 낼 수 없는 정보’가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인간교육 실현을 위한 학부모연대’ 사무국장 박홍나미씨는 “경시대회로 인한 학력강조와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동조의식이 사교육을 과도하게 키우고 있다”며 “사교육이 이젠 교육권력으로 자리잡아가는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선 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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