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능력중시 역량 검증… "내 사람" 인정땐 중용1996년 1월 정치에 입문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주변에는 적지 않은 측근들이 스쳐 갔다. 여전히 건재한 사람도 있지만, 주요 정치 국면마다 이 후보 주변의 면면은 뒷 물결이 앞 물결에 밀려나듯 변화했다. 때문에 이 후보가 집권 후 청와대 참모진이나 내각을 짤 때 당 내 인사 기용이 최소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사람관리 방식 중 가장 큰 특징은 능력을 중시하고 한번 신뢰한 사람은 중용한다는 점이다. 당직을 맡겨 역량을 살피는 검증 절차를 통과하면 '내 사람'으로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이들을 가급적 당 공식 조직 내에 포진시키는 점도 이 후보의 스타일이다. 측근 논란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97년 '원내 7인방'이었던 하순봉(河舜鳳) 최고위원은 이후 비서실장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요직을 잇따라 거쳤고,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대선에 대비해 조직과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대선기획단장인 신경식(辛卿植) 의원도 비서실장 사무총장 특보단장 등 중책을 역임했고, 설화(舌禍)로 비서실장에서 낙마했던 김무성(金武星) 의원이나 이 후보의 뜻을 거슬러 가며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던 권철현(權哲賢) 의원도 미디어대책본부장과 후보비서실장으로 중용됐다. 때문에 '물레방아식' 인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많은 의원이 스스로 국외자로 느끼거나 당의 중대한 위기에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조장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측근은 YS나 DJ식 '가신(家臣)'과는 차이가 있다. 이 후보의 인사 운영의 묘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다. 한 의원은 "영국의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중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식"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편을 들거나 호·불호를 밝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공적인 역할 이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경쟁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했다는 측근이 있을 정도다.
이 후보는 애정을 직접 표현하거나 공공 장소에서 칭찬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은근히 뜻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스타일이다. 윤여준(尹汝雋) 의원이 4월 '20만 달러 수수 의혹'과 관련해 의원회관에서 단식농성을 벌일 때 이 후보는 "윤 의원이 집에 안 들어가는 데"라며 자신은 연이은 지방 행보를 하도록 일정을 지시했다. 지방에서 머무는 일이 드물던 이 후보로서는 상당한 파격이었고 윤 의원은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감복했다고 한다. 4·13 총선 당시 서청원(徐淸源) 대표의 당선 확정 때까지 기다려 당선자 상황판에 장미꽃을 붙인 것이나, 강삼재(姜三載) 의원에게 후원회장인 이정락(李定洛) 변호사를 '안풍' 변호인으로 보낸 것도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사람을 고를 때는 자신이 일일이 따지는 편이다. 특보나 보좌역을 임명할 때는 이력서를 직접 챙기고 면접도 거르지 않는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盧, 신뢰중시 인간관계도 원칙과 명분 강조
"정치적 연대나 제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명분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이지 스킨십이 아니다." 9월 중순 민주당 내부가 비노(非盧)·반노(反盧), 친노(親盧) 세력으로 나뉘어 한창 시끄러울 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반대 세력을 포용하기 위해선 다소 마음에 없더라도 보다 비공식적이고 친밀한 접촉, 즉 스킨십도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고 노 후보가 보인 반응이었다.
노 후보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정치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인맥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원칙'을 쉽게 꺾으려 하지 않는다. 노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이인제(李仁濟) 의원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라는 권유가 많았으나 노 후보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노 후보의 주변에서는 노 후보의 이 같은 고집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노 후보가 정치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명분과 원칙, 이념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고 일을 맡기지만 한번 척을 진 사람과 손을 잡는 데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노 후보의 이 같은 스타일은 주변에 사람을 배치하거나 필요한 사람을 뽑아 쓰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노 후보는 첫 후보 비서실장을 임명할 때 대기업 경영자 출신으로 자신을 보완할 수 있는 김택기(金宅起) 의원을 추천 받았으나 이를 물리치고 정동채(鄭東采) 의원을 택했다. 정치적 성향상 정 의원이 노 후보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어 결국은 '같은 색깔'을 고른 것이다. 여기에다 노 후보는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자신과 동고동락해온 김원기(金元基) 정치고문 등의 조언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스스로 용인(用人)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 후보는 그러나 모든 인사에 직접 개입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상당 부분을 남에게 맡기는 쪽이라고 한다. 선대위 인사를 할 때도 실무자 인선에서는 이상수(李相洙) 총무본부장이 거의 전권을 행사했다. 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기 이전 소규모로 캠프를 운영할 때도 참모들이 추천한 인사를 대부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노 후보가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도 비슷하게 재현됐다. 노 후보는 국장 인사까지는 직접 손을 댔으나 과장급 이하는 국장에게 맡기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 측근 인사들의 전언이다.
인맥 관리에 있어서 노 후보 스타일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결속력이다. 노 후보 주위에는 보통 10년 넘게 노 후보를 도와 온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노 후보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했을 때는 다시 모여 든다. 다만 이러한 결속력이 때로는 외부에 배타적인 모습으로 비쳐져 융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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