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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여자마음도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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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여자마음도 알아주세요'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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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TV앞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를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TV앞을 떠날 줄 모릅니다.” 아내는 남편을 그윽하게 바라보다 차 한잔을 내 온다. “안 자요?” 묻더니 이렇게말한다. “당신 마음, 새 대통령도 알겠죠?”대선을 앞두고 최근 MBC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보내고 있는 자체 선거방송 광고중 하나다. 남편과 함께 밤늦게 노ㆍ정 후보의 단일화 여론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언뜻 봐선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내용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광고를 여성의 시각으로 뜯어보면 그야말로 문제 투성이다. 우선 대선 결과는 남자만 관심이 있나. 이 광고에서의 시선처리는 남자는 TV화면으로, 여자는 남편에게로 향해 있다. 마치 정치는 남성만의 관심 영역이고, 대선 결과를 지켜보는 긴장된 순간에도 여성은 남성만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왜 대통령이 ‘당신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 마음’ 혹은 ‘내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여성유권자들이 하나로 뭉쳐 후보들의 여성정책을 검증하고, 평등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은 둘째 치고라도, 유권자로서의 당당한 자기 권리까지 스스로 포기하는 것처럼 들려 속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 반응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밤늦게 TV를 지켜보는 남편을 위해차 한잔 내오며 대통령이 당신 바램처럼 좋은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얘기인데….

어떤 남성학자는 이처럼 성차별적 내용을 보고도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가부장적 감수성’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여성 특유의 섬세함”, “집으로 돌아가면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평범한 주부”같은 상투적 표현들, “사려깊은 남자, 질투많은 여자”, “든든한 아들 삼형제”같은 설정의 드라마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이같은 시각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들어 그문제점 조차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나, 페미니스트? 그냥 두 딸의 엄마일 뿐이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보면 피가 끓는다. 내 가장 소중한 피붙이들이 당할 차별에 대한 본능적 분노라고나 할까. 둘째가 태어났을 때 미국서혼자 연수중이던 남편의 편지 한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딸딸이 아빠가 되고 나니, 새삼스럽게 여자들이 당하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설움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지.”

그러고 보니 대선 후보들이 모두 딸을 둔 것은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덕규 자유기고가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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