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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허일병사건, 제3의 조사를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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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답답하고 알 수 없는 일이다. 18년 전에 발생한 한 사병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국가기관끼리 대립하는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어제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최종 발표를 통해 허원근 일병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발표하면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실을 날조·왜곡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는 한 달 전 특조단의 중간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특조단의 결론이 이런 내용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두 기관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이 더 심해져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며칠 전에 열린 법의학 공개토론회에서도 자살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군은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했으나 그 때마다 결론은 자살이었다. 내성적이었던 허 일병이 중대장 전령업무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갖고 있었고, 동료에게 "남의 총으로 자살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은 일이 있으며, 소대장의 일기에 중대장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려고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도 있었다는 것이다. 특조단은 사고 당일 오전 10시와 11시 사이 모두 3발의 총성이 청취됐다는 점이 당시 기록분석 결과 새롭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조단은 특히 의문사위가 현장목격자라는 사람들이 없는 상태에서 조사관들만으로 현장검증을 했으며 부검결과와 동일하게 총구방향이 수평이 되도록 재연하는 등 조작도 했다고 밝혔다. 대대본부 및 인접 소초원이 진상규명위에서 진술한 내용 중 다수가 거짓이며 진술조서를 날조하거나 수 시간이나 대답을 강요, 허위 진술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특조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타살이라고 증언한 참고인 2명에 대한 보상금 3,000만원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특조단의 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3발의 총성이 났는데도 2∼3시간이 지난 뒤에야 시신이 발견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총성이 들렸다면 당연히 전부대에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허 일병이 내성적인 성격에 중대장과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설명도 사망 이튿날 휴가가 예정돼 있었고 평소 군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상치된다. 그리고 군이 여러 차례 조사를 했는데도 왜 지금에 와서야 새로운 상황과 기록이 확인됐는지도 의아스럽다. 그를 자살로 몰아가게 한 꼴이 된 중대장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도 알기 어렵다.

어쨌든, 두 기관이 대립하고 있으므로 최종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특조단이 발족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세세한 진상을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했지 이처럼 상반되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의문사위가 조사를 맡은 사건에 군이 다시 개입한 것부터가 우스웠다. 의문사위는 이런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발족된 국가기구가 아닌가. 의문사위는 활동기한을 연장하는 특별법 개정에 따라 내년 2∼3월께 조사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유족들의 재조사 요구와 위원들의 합의가 있으면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의문사위를 통한 재조사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의문사위가 재조사를 한다 해도 결론은 같을 것이며 군의 반발은 되풀이될 것이다. 제3의 기관에 의한 수사가 필요하다. 사건의 핵심인물이 의문사위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만큼 사법부가 나서서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어떨까. 허 일병 사건은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 없다. 2000년 국회 국방위자료에 따르면 군에서는 해마다 300여 명이 죽고 이 가운데 100여 명이 자살을 했다. 더욱이 1980년부터 15년 사이에 군에서 죽은 사람은 자살 3,263명, 폭행치사 387명등 8,951명이나 된다. 허일병사건 보도 이후 의문사위에 접수된 군 의문사 민원도 30건을 넘는 실정이다. 허 일병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는 한 의문사조사는 마무리될 수 없다.

임 철 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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