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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24시/ 11월27일 이회창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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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24시/ 11월27일 이회창의 하루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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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30년 넘게 5시30분이면 일어났지만 이날은 30분 늦었다. 전날 워낙 바삐 움직인 탓에 피곤했고, '정말 대선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늘 하던 맨손체조는 생략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조간신문을 훑어 보고 나니 어느새 7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엷은 화장을 했다.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지만 숟가락을 들 시간이 없었다. 곰탕 국물만 마시고는 7시40분께 넥타이를 손에 든 채 현관을 나섰다. 국립묘지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넥타이를 매고, 부인 한인옥(韓仁玉)씨가 싸준 떡과 과일로 아침을 때웠다.

아침 8시 동작동 국립묘지에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새로운 조국 창조를 다짐합니다'라고 썼다. 8시50분 여의도 당사로 돌아와 부패정권 심판 출정식과 내외신 기자회견을 잇달아 갖고 서둘러 첫 유세장인 종묘공원으로 내달렸다. 오전 11시5분께 종묘공원 앞에 도착한 그는 몰려 든 군중을 보고 열기가 올랐는지 코트를 벗고 단상에 올랐다.

낮 12시께 명동에서 김동길(金東吉) 전 연세대 교수를 만났다. "당선은 당연하지만 압도적 지지를 받도록 하기 위해 나섰다"는 김 전 교수의 말에 이 후보의 얼굴이 환해졌다. 명동 거리를 걷는 동안 시민들은 선뜻 이 후보의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 후보도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아직 선거 분위기가 피부 깊이 파고 들지 않은 탓일까. 낮 12시50분 20여분 만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리에 나섰다. 분위기는 그 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 후보가 가두 매점 주인과 악수하고 있는 사이 젊은이 몇 명이 다가 와 악수를 청했다.

명동 거리 유세를 마친 이 후보는 여의도로 돌아 와 선관위 지시에 따라 해체된 후원회 사무실 정리 모습을 지켜보다가 김포공항으로 차를 달렸다. 울산공항에 내려 중심가인 울산 롯데백화점 앞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5분. 청중이 기대보다 적었던지 잠시 이 후보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울산 유세를 마친 후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그는 갑자기 허기를 느낀 듯 햄버거를 입에 물었다.

버스는 오후 6시15분 부산 서면 광장에 섰다. 광장은 몰려 든 청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연호를 들은 이 후보의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실렸다. "사랑하는 부산 시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저녁 식사를 위해 서면시장 골목을 지나던 이 후보는 악수를 하러 몰려 든 인파로 진땀을 뺐다. 그래도 얼굴에는 연신 웃음이 번졌다.

다음 유세장인 부산대 앞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이 후보는 지하철 표를 자동 개찰기에 넣은 뒤 연호하는 인파에 손을 흔드느라 깜박 잊은 듯 표를 챙기지 않고 그냥 계단을 내려 가려고 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대학생과 중년 남녀가 잇달아 흰 종이를 내 밀어 이 후보의 사인을 받았다. 부산대 앞 유세를 끝내고 버스에 오르니 한 대학생이 창을 두드렸다. 그는 손가락을 두개 펴 보이며 "군대 2년으로 줄여주는 거지요"라고 외쳐 물었다. 이 후보도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10시 숙소인 농심호텔에 도착했다. "첫 유세를 끝냈는데 1997년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묻자 이 후보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몸이 무거웠지만 또 일이 남아 있었다.

지역 현안에 대한 부산 KBS와의 인터뷰를 마치고야 팩스로 날아 들어 온 중앙지 지방판을 들춰 보았다. 이날 이 후보가 묵은 910호실의 불은 밤 11시50분에야 꺼졌다.

/부산=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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