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27일 여의도 당사에서 부패정권 심판 출정식을 갖고 공식 대선 운동에 돌입했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와 명동에서 간이 유세를 한 뒤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동, 밤 9시가 넘도록 거리를 누비며 정권교체를 호소했다.이 후보가 PK 지역을 먼저 찾은 것은 동요하는 이 지역 여론을 서둘러 수습하기 위해서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지지율이 정치 고향인 부산에서는 물론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아성인 울산에서도 올라가고 있어 초반 진화가 시급했다. 이 때문에 서청원(徐淸源) 대표와 최병렬(崔秉烈) 박근혜(朴槿惠) 홍사덕(洪思德) 의원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 등 당내 중진이 대거 이 후보의 유세에 합류했다.
이 후보는 이날 종로 유세에서는 물론 울산 롯데백화점 앞에서도 "지난 5년간 이 정권의 실세들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을 때 장관을 하며 그 핵심에 같이 있던 사람이 새 정치를 주장할 수 있느냐"며 노 후보를 비난한 뒤 "부패정권을 잇는 아류정권을 만들려는 사람에게 12월19일 분명한 충고의 매를 들자"고 호소했다. 이 후보는 이어 지역분위기를 의식, "정몽준씨는 노 후보보다 저와 성향이 더 가까운 사람으로 정권교체와 국민통합을 위해 뜻을 같이 하면 함께 갈 수 있다" 고 덧붙였다. 서 대표도 "이번 선거는 DJ 양자이자 후계자인 노무현이냐, 깨끗한 국가를 이룩할 이회창이냐를 택하는 선거"라며 "KBS 여론조사에서 호남 유권자의 89.1%가 노 후보를 지지한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은근히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참배, 방명록에 '새로운 조국창조를 다짐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부패정권 심판 출정식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정권교체의 성스러운 재단에 바친다"고 다짐했다. 그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시종 '급진적' '위험한' '파괴적' '포퓰리즘' 등의 표현으로 노 후보를 비판했다. 또 "노 후보와 나는 신념과 이념, 정치철학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노 후보는 때론 매우 급진적이고 파괴적이지만 나는 매우 안정적이고 중도개혁을 추구하는 등 합리적이어서 국가를 잘 경영할 수 있다"고 차별성을 부각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이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수원 서울 등 전국을 종단하며 대규모 거리 유세를 펼치는 등 본격적인 표밭갈이에 나섰다. 노 후보는 이날 오전 부산역 광장 유세에서 "부산의 아들인 내가 대통령이 되면 경의선·동해선 연결은 물론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가 북한을 거쳐 부산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동북아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서울이 경제수도, 충청도가 행정수도라면 부산은 동북아시대의 물류수도, 해양수도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또 이 곳의 반DJ 정서를 의식,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 정권, 호남 정권이 아닌 노무현 정권, 전국 정권이 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부산역 광장에는 노사모 등 지지자 500여명이 나와 '친구야, 인제 부산에서 밀어줄께' 등 플래카드를 흔들며 '대통령, 노무현'을 연호, 분위기를 고양시켰다.
노 후보는 이어 전통 재래시장인 대구 칠성시장에 도착, 영남의 적통 후보임을 강조한 뒤 "서민이 이 나라 주인으로 당당하게 서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서민정서를 파고들었다. "수도권 못지않게 잘 사는 지방분권시대를 만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동영(鄭東泳)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은 "삼성라이온즈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역전했듯, 대세도 노무현으로 역전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일부 상인들은 "노 후보, 힘내소"라는 쪽지와 함께 쌈짓돈 9만5,000원을 모아 노 후보에게 직접 건네기도 했다.
노 후보는 오후에는 대전에서 자신의 출정식을 겸한 전국 선대위원장 연석회의를 주재, 핵심 공약인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을 적극 홍보하는 등 충청권 민심 공략에 주력했다. 출정식에는 이날 아침 광주에서 출발한 한화갑(韓和甲) 대표, 서울에서 출발한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현역의원 50여명과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개혁국민정당에 입당한 김원웅(金元雄) 의원이 자리를 함께 해 노 후보 승리를 다짐했다. 저녁 7시10분께 상경한 노 후보는 서울역 광장에서 "이회창 후보가 자녀 학비와 취직, 군대 문제 등을 한 번이라도 걱정해 본 적이 있겠느냐"며 이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서울역 광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노 후보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부산=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부산·대전=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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