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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고려대교수 "백제는 일본의…" 冊서 주장/ "백제-고대일본은 특수 용병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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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고려대교수 "백제는 일본의…" 冊서 주장/ "백제-고대일본은 특수 용병관계였다"

입력
200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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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가운데 백제가 고대 일본과 유난히 가까웠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백제가 일본을 일방적으로 가르친 것으로 국내에서는 배워왔다. 김현구(金鉉球·58·사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그러나 최근 출판한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창작과비평사)에서 백제는 일본에 선진문물을, 일본은 백제에 군사원조를 각각 제공한 특수한 용병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와 일본의 '일본서기' 중국의 '구당서' '신당서'를 인용하며 이처럼 주장한다.일본은 고대 국가를 발전시키면서 철제 무기의 수요가 늘자 철을 찾아 한반도로 건너와 탁순(대구 또는 창원으로 추정)에서 백제인들과 366년에 만난다. 한강변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했던 백제는 당시 고구려의 침략을 피해 남하, 일본 신라 등과 공조해 배후를 단단히 다지려고 시도하던 때였다. 양국의 만남이 시작된 뒤 백제 아신왕(阿莘王·재위 392∼405)은 왕자 전지를 일본으로 보내 우호관계를 추진한다. 이후 개로왕(蓋鹵王·455∼475)은 동생 곤지(昆支)를 일본에 파견했으며 그의 아들들이 귀국, 동성왕(東城王·479∼501) 무령왕(武寧王·501∼523)이 됐다.

이처럼 백제가 왕실 사람을 파견한 이유는 고구려 신라와의 공방에 필요한 군사력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이에 따라 일본은 최대 1,000명의 병사와 말 배 등을 백제에 제공했다고 김교수는 주장했다.

물론 백제는 일본에 선진문물을 제공했다. 불교, 유교 서적과 불상 그리고 천문학자 의사 약사 연주자 등을 보내 그들의 전문 기술을 전파했다.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두 나라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서로 필요에 의해 교류한 것이 된다.

당시 한반도와 일본의 외교 관계에서 선택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다는 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그 가운데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백제를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문화중심은 남쪽인 남조에 있었는데 남조와 가장 빈번하게 교류하던 나라가 백제였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또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에임나 문제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백제 동성왕 무령왕, 일본 케이타이(繼體·507∼531)천황 김메이(欽明·540∼571)천황 시기에 일본이 백제와 교류는 많았어도 임나와는 공식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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