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 의회는 사우디 아라비아 성토장이다. 주미 사우디 대사의 부인이자 고(故) 파이잘 국왕의 딸인 하이파 알 파이잘 공주의 자금이 9·11 테러범에게 지원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상·하원 의원들의 사우디 정부 때리기는 가히 무차별적이다.백악관은 겉으로는 "사우디는 테러와의 전쟁의 훌륭한 동반자"라며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 사우디 기업인들이 테러범들에게 돈을 지원했다는 등의 보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일련의 사우디 비판 흐름에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미국인의 정서를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보호를 받았고, 우리는 그들에게 군사 기지와 석유를 의존했다"는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의 말대로 9·11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사우디는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맹방 중의 맹방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 사우디가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한 기지 사용에 반대한 사우디 정부의 입장은 미국의 불쾌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최근 미국의 사우디 때리기는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동맹의 궤도를 이탈하는 듯한 사우디 정부를 제어하려는 미국에게 사우디 왕가의 테러 자금 지원 스캔들은 더 없이 좋은 호재가 된 셈이다.
더욱이 이라크 공격을 앞둔 미국으로서는 사우디를 동맹의 틀 속에 다잡아 둘 필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대 이라크 전쟁이 다가올수록 전세계에 '적과 동지'의 구분을 더욱 더 밀어붙일 미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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