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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VS 盧](2)의사 결정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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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VS 盧](2)의사 결정 방식

입력
200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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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3월18일 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당시 총재의 서울 가회동 자택. 귀가한 이 총재는 기다리고 있던 측근 K,Y씨에게 5월 전당대회의 총재경선 출마 회견문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아니 그럼 집단지도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다음날 이 총재의 집단지도체제 수용선언에 대비, 기자들의 예상 질문과 답변까지 준비했던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총재의 의중을 완전히 거꾸로 읽은 셈이었다. 그 무렵 최병렬(崔秉烈) 부총재도 "집단지도체제 수용을 건의했더니 이 총재가 고개를 끄덕이길래 그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후보 주변 사람들의 이 같은 '혼선'은 그의 독특한 의사결정 스타일에 기인한다.

이 후보는 중요한 현안일수록 다양한 보고채널을 가동,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한다. 사안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사를 호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또 의견을 들을 때 말을 도중에 자르거나 싫은 내색을 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대개는 "잘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후보를 만나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수용됐다고 착각하는 이유다.

이 후보는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혼자서 결정을 내린다. 주위에 의중을 미리 내비치는 법도 없다. 그리고 이런 결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겠다는 식이다.

이 후보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 김윤환(金潤煥) 전의원 등 중진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킨 데 대해 이를 건의했던 인사들은 "사실 우리도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당시 공천자 발표 이틀 전 심야공천심사가 진행 중이던 호텔에 불쑥 나타나 김 전의원 등 낙천대상자 이름이 적힌 메모를 전했다.

5월 전당대회에서도 김무성(金武星) 전 비서실장 등 측근들은 이 후보에게 후보수락 연설 후 큰 절을 할 것을 건의했으나, 실제 이 후보가 그렇게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측근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락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 후보의 이런 스타일 때문에 측근들은 현안이 돌출하면 좀처럼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다. 후보의 생각이 어떤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의견 수렴 과정이 길고 신중하다 보니 결정의 순발력이 떨어져 적기(適期)를 놓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해서 내려진 결정이 번복되는 예도 있었다. 지난 봄 집단지도체제 파동이 그랬고, 앞서 교원정년 조정을 두고서도 이 후보가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여론을 존중하는 현실 정치인이 돼 가고 있는 것으로 봐 달라"는 게 이 후보측 주문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노무현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단일화 재협상이 최종 결렬 위기를 맞은 22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오전 10시의 기자회견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긴급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기자회견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회의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다. 회의에서는 통합21측의 여론조사 무효화 조항 삽입 요구를 성토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러나 노 후보는 이들의 성난 목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총총이 기자회견장으로 발길을 옮겨 통합21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노 후보의 의사결정 방식은 이처럼 '결단형'에 가깝고 승부사적 기질도 엿보인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중대 사안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려 놓고도 공식·비공식 회의에 부친다. 1998년 어렵사리 서울 종로에서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인 1999년 1월,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하겠다며 지역구를 옮길 때도 노 후보만의 결단이 앞섰다. 노 후보는 당시 참모 회의를 소집, 모든 사람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반대했지만 노 후보가 설득에 나서서 부산 출마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런 저런 현안이 있을 때마다 "중지를 모아주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회의 흐름과 노 후보의 결정 내용이 다를 때가 있는 것도 이런 식의 의사결정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된 측근들은 합리적 방식으로 설득하면 노 후보가 의외로 생각을 쉽게 바꾼다고도 말한다. '상향식' 또는 '청취형'이라는 얘기도 된다. 언론분야에서 일했던 한 특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진행된 당내 대선후보 경선 방식 논란에서 노 후보는 원래 당원·대의원 경선 방식에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국민경선으로 가야 한다는 젊은 측근들의 집단적 건의를 받고는 "일깨워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의사결정 방식의 일관성을 운위하기가 쉽지않다. 주변에서는 이를'불가측성(不可測性)'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얼마 전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단일화 수용이 그랬다. 당시 국민경선과 TV토론이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아무도 노 후보의 방향 전환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는 TV를 보다 대뜸 국민통합21측의 여론조사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신속성과 함께 즉흥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스타일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불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은 안정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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