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사실상 시인한 것은 1993년의 핵위기를 연상시키면서 한반도에 긴장과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과연 제2의 북핵 위기가 올 것인가.이번 사태의 해결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 1993년 당시와 지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북한의 국내 변화를 들 수 있다. 나름대로 제네바 합의를 기반으로 북한은 지난 수 년간 국내 개혁·개방을 추구해왔다. 이 결과 남북관계의 괄목할만한 진전, 북일교섭의 진행 등으로 연결되어 왔다. 또한 제네바 합의 자체가 논의의 기초가 된다는 점 등이 당시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커다란 부담이었다.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은 클린턴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북한을 제거대상으로 보는 한편 북한의 행동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협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전략은 개방정책으로 남한과 일본 등의 대북인식 전환을 꾀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린 것 같다. 그러나 강경한 미국의 태도와 지속되는 이라크 사태로 미국의 대북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예상한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핵개발 계획 카드를 쓴 것 같다. 어차피 내년이 되면 핵사찰과 미사일 개발 유예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고, 그 동안 이라크 사태의 진전이 미국의 북한정책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는 까닭에 선제공격으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계산은 상당히 복잡한 상황을 야기했다. 북한의 시인에 관계없이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핵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해 왔다는 것이 알려짐으로써 미국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대북 신뢰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보수 세력들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화했다.
북한의 핵개발 계획이 미국 내에서 새롭게 북한문제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내의 강경노선과 대외적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취하고 있는 협상론 사이에 간격이 더욱 벌어지게 되어 북한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더해진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불신과 미국 내의 새로운 정치상황으로 인해 북한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일과 미국의 전반적인 외교노선에서 북한을 예외로 인정해야 하는 이중적 명분찾기 과제가 등장했고, 현재 상황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당분간 북미 교착상태는 미국의 이라크 문제와 북한의 명분찾기 노력 등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한의 정권교체와 북일교섭의 부진도 어려움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돌파구의 가능성이 있다면 한편으로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끊임없는 대북 설득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사찰수용과 대미협상 재개를 유도하는 일이다. 다른 한편 한국, 중국, EU, 러시아 등 각국이 미국을 설득하여 북한과 이라크의 차이점을 이해 시키는 일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의 이라크 사태 처리 과정이다. 이라크 핵사찰이 후세인 정권 교체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거나 정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미국 내 외교노선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되고 이 경우 미국의 대북한 노선의 변화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에 핵개발 관련 시설제공으로 문제가 된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 내의 공방이나 이라크 사태가 중동 전체에 파급될 경우 미국의 외교노선 수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어느 경우든 앞으로 상당기간 명분을 둘러싼 공방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분주한 물밑 외교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혼미한 한반도 상황에서 우리에게 대북대화 채널 유지는 아주 중요하며 동시에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의 협조로 북미간에 새로운 합의점 도달을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기이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1993년 핵위기에서 우리가 당했던 소외감을 극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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