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가 누군가를 보고 영화를 보는 습관을 조금씩 뒤집어 주는 배우가 늘어간다. 대표 주자로 최근엔 부쩍 유해진을 꼽는 사람이 많다.'광복절 특사'에서 그는 회식자리를 빛내며 구수하게 부른 '분홍 립스틱' 으로 한 여자의 영혼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린다. "적어도 감옥에 갈 일은 없겠지"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현직 경찰인 그는 감옥에 있는 애인 때문에 속을 썩던 송윤아의 새로운 애인 역을 맡았다. 자존심 때문에 지구 끝까지 쫓아갈 듯 질긴 경찰 역을 맡아 열연을 한 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솔직히 '정말 웃기게 생겼네'다.
그 웃기게 생긴 친근함으로 '주유소습격사건'의 용가리를 지나 '신라의 달밤'에서는 이원종의 뒤통수를 뜨겁게 하는 기회주의자 조폭으로, '무사'에서는 농민,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서는 장동건에게 애인이 사살당하자 미쳐버린 여자의 오빠인 횟집 주인 등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조연이지만 하나같이 강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다. 별스럽게 생긴 돌출 치아와 와이셔츠 단추구멍처럼 작고 날카로운 눈의 그였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연기의 압권은 '공공의 적'에서의 칼잡이다. 장미수가 놓여 있는 '짝퉁' 앙드레 김 재킷을 우아하게 걸치고는 칼로 손가락 사이를 찍는 아슬아슬한 연기로 '공공의 적'의 웃음에 일조했다. '라이터를 켜라'에서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겁에 질려 있는 어리숙한 표정의 침착 남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스타급 배우들의 변신에만 화제를 집중시키는 영화계에서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할 따내기와 기대이상의 변신을 보여주며 서서히 이름을 각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결코 행운만은 아님은 그의 지난 세월이 말해준다. 유해진은 연기파 배우들의 산실인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하고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등 여러 편의 연극에서 얼굴을 알려온 대학로 연극배우 출신. 어떤 이의 월급과 같은 돈을 연봉으로 받으며 연극판을 지켜 오던 배우들이 어느 순간 영화의 단역으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도 영화로 자리를 옮겼다. '간첩 리철진'의 택시강도 4인과 함께 잠깐 동네깡패로 출연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장면은 분명 명장면이었다.
최근 연속된 출연, 점점 커지는 역할로 신선함보다는 상투적인 냄새도 나기 시작한 그가 자기를 낮추는 심성을 오랫동안 잘 유지하며 좋은 배우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와 같은 배우가 있기에 한국영화도 1,000만명의 관객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영화컬럼니스트·amsajah@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