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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존경받는 재벌 왜 우린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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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존경받는 재벌 왜 우린없나

입력
200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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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며 최고경영자인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이다. 그의 재산은 63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가 존경받는 것은 부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20세기 말 세계경제의 틀을 바꾸어 놓은 정보통신의 혁신을 가져온 혁명적 기업가이다. 또한 그는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31조원을 아동복지 등을 위해 세계 각국에 기부한 세계 최대의 자선기부가이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존경받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는 최근에 인도를 방문하여 에이즈 예방사업에 1,200억원을 기증하면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시 밝혔다. 그는 "세 자녀가 안락한 생활을 할 정도의 재산은 남겨줄 것이지만 자식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자식들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여기에 빌 게이츠를 더 존경하게 만든 것은 그의 아버지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산세와 증여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제안하자 이를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이 빌 게이츠의 아버지였다. 그는 재산세와 증여세를 폐지하면 부자들의 자손들만 더 부자로 만들고 노력하는 서민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 그리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그는 "재산세를 위한 백만장자모임"을 조직하고 데이비드 록펠러, 조지 소로스와 같은 미국의 대재벌들을 설득하여 재산세와 증여세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신문에 이를 알리는 광고까지 게재했다. 그는 미국의 대재벌 120명에게 반대 청원서에 함께 서명해줄 것을 권유했고, 4명을 제외한 모두가 기꺼이 참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의 4대 부자이고 천재적인 투자자로 알려진 워렌 버핏이 청원서에 서명을 거부한 이유이다.

그는 재산세 폐지를 찬성해서가 아니라 청원서가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이다. 그는 상속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세금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대물림하는 것은 "세습하는 부자귀족"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2020년의 올림픽 대표선수를 2000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큰 아들로 선발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며 두산그룹 총수인 박용성 회장은 우리나라에는 기업인들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애국자로 존경받기는커녕 툭하면 법을 어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가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남의 탓을 하였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재벌들이 존경받는 풍토가 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의 존경은 "나라를 먹여 살려"주기 때문에 당연히 받는 것이 아니라 재벌 스스로 국민에게서 얻어 내야 하는 것이다. 기업가의 공헌이 가장 크지만 노동을 하는 모든 국민이 함께 나라경제를 일으키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먹여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다.

세계 최대의 부자이자 혁명적 기업가가 재산상속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그의 아버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해서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고 주장하며, 천재적 투자자인 대재벌이 세습하는 부자귀족이 경제발전을 망친다는 주장을 하는 모습이 바로 시장경제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하고 이들 재벌들을 존경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 중에는 자식들에게 재산은 물론이고 기업의 경영권까지 물려주기 위해서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상속세와 증여세를 피하고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 심지어는 3세, 4세까지 대물림을 하기 위해서 해외투자를 위장하여 신주인수권을 편법으로 인수케하고도 불법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주주 가족도 사외이사로 선임하게 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일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산과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은 올림픽선수를 세습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의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것에 반대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재벌총수를 볼 수는 없는 것인가?

장 하 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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