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나빴다 생각해요 (Better luck next time)" 이 말은 불행에 빠진 눈군가를 위로하는 말이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실수를 한 뒤 할 말은 아니다. 더욱이 그 사소한 잘못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체인징 레인스(Changing Lanes)'는 우리 인생의 사소한,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부족해 생기는 실수와 그것을 처리하는 습관적인 방식이 갖는 잠재적 독성에 착안했다.이혼에 술주정뱅이었던 보험 외판원 도일 깁슨(새뮤얼 잭슨). 비록 이혼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지만 이제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제 술 생각도 없고, 새집도 마련했다. 법원에 출두, 양육권만 찾아오면 된다. 그렇게 되면 아내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뉴욕 월가의 잘나가는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 게빈 베넥(벤 애플렉). 1억 달러에 달하는 어린이 재단 양육권을 둘러싼 소송에 종지부를 찍을 귀중한 서류를 갖고 법원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나 고가도로에서 영화제목처럼 차선을 변경하던 게빈이 도일의 차를 받는 접촉 사고가 나고, 급한 마음에 게빈은 사고 처리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차라도 좀 태워달라"는 도일의 말에 "운이 나빴다 치라"는 무책임한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아마 보잘 것 없는 차를 모는 흑인이니 다음에 돈이나 듬뿍 집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일은 당연히 법원에 늦어 양육권을 빼앗겼고, 게빈은 가까스로 법정에 도착했으나 서류가 없다. 도일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서류를 빠뜨리고 왔던 것.
한 순간의 사고로 인생의 꿈이 깨진 도일의 심경 변화를 보자. 처음에는 분노가 앞섰다. 게빈이 찾아와 애걸복걸하자 더욱 화가 치민다. 그러나 한 숨 돌리고 생각하니한 남자의 인생이 달렸다는데, 그래 돌려주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법원 휴지통을 뒤져 서류를 찾아냈다. 한 동안 거리를 헤매다 사무실에 들어와 퀵서비스를 불렀다. 이제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전화기에 녹음된 게빈의 목소리. "당신을 파산시켰다. 빨리 서류를 돌려달라." 초조한 나머지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 같은 게빈과 폭발할 것 같은 분노에 휩싸인 도일의 심리가 아슬아슬하다.
또 하나의 질문. 뉴욕에서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어린이 재단 소송이 결국 유가족으로부터 돈을 빼돌리려는 법률회사의 음모를 알게 된 게빈이 양심에 맞게 행동하겠다고 하자, 아내는 "당신이 동료와 바람피우는 걸 알고도 참았다. 그건 가정을 위해서다. 당신도 빨리 사기극에 가담하라"고 독촉한다. 월가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거짓말과 협잡, 그리고 위선과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류를 찾으려던 게빈의 비열한 행동이 거듭되자 도일 역시 그에게 반격을 가하며 두 사람의 갈등은 죽음을 불사한 게임으로 치닫는다. 게빈이 잘못을 사과하고 모든 게 잘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업 영화의 한계.
20대에게는 다소 지루해 보일 만한 설정이지만, 한 번쯤 자기 사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노팅 힐'로 스타가 된 로저 미첼 감독의 미국 데뷔작. 시드니 폴락이 게빈의 비열한 장인으로 나왔다.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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