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까지 공산품의 무관세를 실현, 전 세계 상점을 '면세점'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무역 협상안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무역 전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이번에 알려진 미국 협상안은 장기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자국 산업계를 구출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련됐다. 현재 산업기계류에 1.2%, 일반 공산품에 대해 5%의 저율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산업계는 무관세화가 실현되면 개도국의 공산품 시장을 마음껏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지난 50년 간 무역 장벽 철폐를 추구해 온 미국 정책의 완결판이 이번 협상안이라고 미 당국자들이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행정부는 이번 협상안으로 20%의 고율 관세로 보호받고 있는 미국의 의류, 가죽 산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수할 정도로 결연하다.
미국의 협상안은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EU는 이달 초 세계무역기구(WTO) 특별회동에서 일부 공산품의 무관세화를 제의했고, 일본 뉴질랜드 등도 공산품의 무관세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측통들은 "잇따른 선진국들의 관세철폐 주장이 개진된 뒤 미국의 협상안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안의 파괴력이 배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0% 이상의 공산품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 아르헨티나 등 후발 주자들은 향후 진행될 도하 라운드 공산품 및 비농산물 분야 협상에서 사활을 건 저항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제안대로라면 2010년까지 산업기계류의 관세를 6% 이하로, 일반공산품의 관세를 8% 이하로 낮춰야 하는 후발 주자들로서는 자국 시장에서도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협상안이 WTO 사무국에 제출돼 도하 라운드 공산품 및 비농산물 분야 협상이 진행된다면 일대 파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라운드 자체가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관측통들의 우려다. 한국, 대만 등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품목별 경쟁력에 따라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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