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세계 영화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아시아가 할리우드로부터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받고 있다. 아시아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이 잇따라 할리우드 영화사에 팔리고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소수 예술영화로만 평가되던 아시아 영화의 지위가 한 단계 상승했다.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25일 '아시아가 미국을 떨게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영화의 할리우드 공략을 소개했다.
타임은 "지금까지 아시아는 잘 된 서양 영화를 베끼는 데 열중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미국이 아시아의 시나리오를 훔치고 있다"며 역전된 영화 교류 현상을 설명했다.
■할리우드에 입성한 아시아 영화
아시아 영화의 성장을 새삼 일깨운 것은 지난달 미국에서 개봉된 일본 공포영화 '링'의 리메이크 작품. 개봉 5주 만에 1억 달러의 수입을 기록해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특히 '링'은 개봉 이후 점차 내리막선을 그리게 마련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첫 주(1,500만 달러)보다 셋째 주(1,800만 달러) 수입이 많아, 영화에 대한 호평이 입소문을 타고 퍼졌음을 보여줬다.
태국·홍콩 합작 공포영화인 '디 아이', '링'의 감독과 원작자가 다시 손잡고 만든 일본 공포영화 '다크 워터'도 미국판이 제작되고 있다. 한국 영화로는 '조폭 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시월애', '가문의 영광' 등의 리메이크 판권이 미국에 팔려 한창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 시나리오뿐 아니라 재키 챈(成龍), 서기 등 아시아 배우는 물론 아시아 감독들까지 할리우드에서 속속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아시아 영화, 신분 상승
일본 영화계가 1960년대 말 무너지기 시작한 이후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영화산업은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몇몇 아시아의 거장들이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오리엔탈리즘에 바탕을 둔 제한적인 관심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아시아 영화들은 서양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양적 내용을 넘어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대접받고 있다.
아시아 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할리우드에 중계하고 있는 미 영화사 버티고 엔터테인먼트의 덕 데이비슨 대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아시아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이 요즘 들어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는 할리우드에게 아시아가 아이디어의 보물창고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아시아 영화 수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타임은 "미국판 '링'에서 보듯 아직까지는 원래의 영화를 그대로 베꼈을 때에만 리메이크 작품이 위력을 발휘한다"며 "10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홍콩 영화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저수지의 개들)을 만든 것처럼 미국 영화인들에게 노력과 근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