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즉위 직후인 1392년 8월 한양 천도를 명했다. 그는 대신들이 반대하자 "도읍을 옮기는 일은 경들도 역시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신이 옳지 않다고 저지한다면, 후손들이 무슨 힘으로 이 일을 해내겠는가?"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1394년 10월 천도를 강행했다. 그리고 600여년이 흘렀다.지금 서울은 어떤가. 수십 년 간 지속된 정부와 서울시의 무계획적인 개발논리로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콘크리트와 벽돌더미만 가득한 도시. 숨조차 쉴 수 없는 매연과 소음, 교통지옥….
살기 좋다던 강남은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과 오피스텔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계획도시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목동은 '무계획의 도시'로 전락했다. 재개발이 완료된 성동구 일대는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 서울 그 어디도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뿐인가. 일산 분당 평촌 용인 안산 등으로 도시가 팽창되면서 함께 곪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개발계획을 토해낸다. 얼마 전 이명박 서울시장은 강북 뉴타운 조성 계획을 내놓았다. 내년에는 이들 지역에 포크레인의 굉음이 울리며 수만 채의 주택이 철거될 것이다. 들어서는 것은 스카이라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고층아파트거나 숲 속에 숨은 듯 빽빽이 들어선 빌라와 저층아파트다. 그 것은 또다른 난개발일 뿐이다. 건설교통부와 경기도도 뒤질세라 수도권에 2, 3개의 신도시를 추가로 개발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금도 수도권은 각종 공사로 신음 중이다. 어디를 가나 산자락이 잘린 채 신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경기도에서 택지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곳만도 37곳이나 된다. 이 공사가 끝나면 인구 79만 명인 부천시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 그 피해자는 그린벨트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허파'를 파먹는 데 앞장섰다. 김대중 정부 들어 30년 빗장이 풀어지면서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작년 이후 수도권 그린벨트 4억6,000만평 중 10% 가까운 4,000만 평 가량이 해제됐다. 그렇게 풀려난 녹지에는 예외없이 주거단지가 만들어지고 투기꾼들이 몰려든다.
그린벨트까지 풀어가며 개발에 열을 올린 결과는 참혹하다.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까지 진입하려면 1시간30분∼2시간이 걸린다. 대부분 도시에서 대기의 질이 서울 이하로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주요 하천은 4, 5급수로 수질이 악화했다. 생명벨트를 파괴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수도권 인구집중→택지개발→환경파괴의 악순환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이 시점에 대선 후보들이 행정수도 이전 등 수도권 과밀해소 대책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행정수도 이전은 쉬운 일은 아니다. 통상 수십 년이 걸리고, 막대한 비용은 물론 국민합의 도출과 통일 이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정치·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제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된 갖가지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때가 아니다. 누가 당선되든 간에 새 정부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이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이 충 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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