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교육으로 인해 자비로울 뿐 폭력적이다."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깔리굴라 1237호'(고선웅 작, 박근형 연출)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숨겨진 폭력성에 대한 탐구다. 고삐에서 풀려난 억눌린 욕망과 분노가 파멸을 향해 치닫는 과정을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보여준다.
돈을 내면 100분간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테마파크 깔리랜드. 주인공은 회사에서 해고되자 전재산을 털어 깔리랜드 프로그램에 1237번째로 지원한다. 거기서 그는 폭군의 대명사인 고대 로마 황제 깔리굴라처럼 신하를 망치로 때려죽이는 등 온갖 폭력을 즐기지만, 자신의 이중성을 끝내 용납하지 못하고 미쳐서 스스로 혀를 자르고 죽는다.
이 연극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박지일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다. 말하는 즉시 절대권력이 되어 버리는 말을 토해내는 혀를 자르고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죽어가는 그의 모습에 관객은 숨을 죽인다. 그러나 주인공의 분노가 어디서 비롯됐고 왜 그토록 깊은지 알 길이 없어 그가 펼치는 잔혹한 폭력의 유희에 공감하기 어려운 게 흠이다. 힌트라면 "사회생활 5년간 내가 배운 것은 잔인성, 모질어야 산다는 것" "내 의지에 반하는 상황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거기서 게임은 시작된다"는 독백 정도인데, 이는 설득을 생략한 일방적 진술에 가깝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깊이에서 작가의 힘이 덜 여물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연극이 고전극을 보는 듯한 의미심장하고 품격있는 대사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허전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12월 1일까지. (02)764―876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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