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 채권단이 26일 발표한 사업구조조정안은 하이닉스의 매각보다는 경영정상화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바꿔 말하면, 줄곧 해외매각 원칙만을 고집해온 정부와 채권단이 비로소 '독자생존'의 모험을 시작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적기(適期) 투자가 요체인 반도체시장에서 1년 6개월 넘도록 시설 업그레이드를 못해 온 하이닉스가 과연 신규자금의 수혈 없이 부분적인 채무재조정만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추가적인 채무재조정, 약효 있을까
하이닉스가 안고 있는 금융권 부채는 11월 현재 국내 금융기관 차입금 4조9,000억원과 미국 유진공장 부채 1조원을 합쳐 약 5조9,000억원 수준. 채권단은 이 가운데 국내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무담보채권의 50%(1조9,000억원) 출자전환과 잔여여신 3조원의 만기연장 및 금리감면(6.7%→3.5%)이 이뤄지면 하이닉스가 연간 1,800억원의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이자 감축에 따른 자금여력으로 신규 시설투자에 나설 수 있는 데다 비핵심사업에 대한 자구노력을 병행할 경우 2006년이면 금융권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경영이 완전 정상화할 것이란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은 "청산과 매각, 사업구조조정 등 3가지 방안 중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유일한 대안은 사업구조조정뿐"이라며"채무재조정이 이뤄지면 특별한 외부변수가 없는 한 2006년이면 하이닉스의 경영이 정상화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신규자금 지원이 배제된 채무재조정이 획기적인 회생발판이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하이닉스가 3분기에만 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폭이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인데다 오랜 시설투자 미비로 상품경쟁력이나 향후 수익성도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동양증권 민후식 팀장은 "외국계 컨설팅 기관들이 그동안 여러 차례 제시해온 의견을 재탕, 삼탕한 것에 불과하다"며 "신규자금지원을 통해 하이닉스의 낙후된 설비를 개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어떤 채무재조정도 실효가 없다"고 밝혔다. 3분기 재무제표상 하이닉스는 1,803원의 비용을 들여 653원어치를 판 셈인데 이처럼 비용구조가 열악한 상황에선 아무리 금융비용을 줄여준들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 될 뿐이란 비판이다.
■채권단 합의 도출될까
채권 금융기관의 합의도출 과정도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당장 산업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무담보채권자이기 때문에 이 채권에 대한 50% 출자전환이 추진될 경우 투신권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메모리 등 사업부문 매각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채무재조정 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일단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금융기관들도 적지 않다. 여기엔 하이닉스 여신에 대해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쌓은 상태이기 때문에 채무재조정이 단행되더라도 큰 추가적 부담이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4년 후면 하이닉스가 완전정상화할 것이란 논리엔 동의하지는 않지만 청산으로 몰아가는 것보단 일단 경영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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