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브레이션 싱가포르'. 밤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불꽃이 11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축제다. 싱가포르는 상하(常夏)의 나라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으로 들떠있다. 경제대국의 풍요로움, 소박하고 다채로운 이민족의 삶…. 싱가포르의 축제는 여러 문화가 어우러지는 용광로인 동시에 개체성을 또렷이 유지하는 '모자이크' 향연이다.우리나라의 명동에 해당하는 번화가 '오차드로드'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국제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하고 세련된 면모를 자랑한다. 내년 1월1일까지 매일 점등식을 하는 16m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해, 센터포인트 등 번듯한 쇼핑센터 앞에는 자잘한 전구를 매다는 대신 아예 이 시즌을 위한 별도의 세트가 세워져 있다.
인자한 산타클로스, 예쁘고 깜찍한 요정과 천사 등 이 거리는 온갖 상상력이 가미된 '동화의 나라'다. 관광청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심사해 상을 주기도 한다. 인기 만화주인공이 한데 모여 뮤지컬공연을 하는 '트윙클툰 크리스마스'도 매년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다운타운의 행사다.
싱가포르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인은 오차드로드의 경제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과시하듯 그들만의 동네인 차이나타운에서 별도 축제를 벌인다. 내년 2월15일까지 빨간색, 초록색 등 원색에 화려한 용무늬를 자랑하는 구정축제의 점등행사가 열린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정착한 '말레이빌리지' 의 크리스마스는 또 색다르다. 동남아식 꼬치구이 '사테' 굽는 연기가 자욱하고 흥정 소리가 요란하다.
이슬람교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하리 라야'(12월15일까지)를 앞두고 역시 점등행사가 한창이다. 오차드의 화려한 최첨단 조명 대신 흔히 포장마차촌에 둘러쳐질 법한 작은 전구가 빽빽하게 매달려 있다. 촌스럽지만 정겹다.
카레향이 물씬한 인도계 주민의 마을 '리틀인디아'에는 제라늄과 난꽃을 줄줄이 엮은 목걸이가 가게마다 매달려 있다. 기도할 때 쓰는 이 목걸이는 고유의 크리스마스 장식.
싱가포르인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이곳서도 비행기로 8시간 남짓 걸리는 이국의 풍취를 즐기러 온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인도서 가져왔다는 정교하고 화려한 직물, 우리 돈으로 몇백 원 하는 목공예품이 상점 곳곳에 가득하다.
지난 24일 싱가포르강은 12만마리가 넘는 장난감 오리로 뒤덮였다. 흐르는 강물에 모형오리를 띄워 우승자에게 100만 SGD(싱가포르달러, 1SGD당 약 700원)를 주는 '덕 레이스'(Duck Race)가 열렸기 때문이다. '셀레브레이션 싱가포르'에선 이처럼 크고작은 볼거리와 이벤트가 계속 이어진다.
12월 14,15일에는 싱가포르강에서 형형색색의 드래곤보트가 경주를 벌인다. 요란한 북소리, 강변 200여개 카페의 산해진미가 재미를 더한다. 내년 1월30일부터 2월15일까지는 '2003 싱가포르강 홍빠오 축제'가 있다.
아찔한 곡예, 눈부신 불꽃놀이와 산해진미로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행사. 내년 2월 8일 '칭게이 싱가포르'에서는 전세계 공연단이 출연해 갖가지 모양의 물고기, 해초 분장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거리행진을 벌인다.
/싱가포르=글·사진 양은경기자 key@hk.co.kr
■퓨전서 거리음식까지 식도락 천국
싱가포르 가정주부들은 웬만해서는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다. 집밖에 나서면 맛있고 푸짐하면서 저렴한 음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도 이곳에서는 잠시 휴식'이라는 관광 문구가전혀 어색하지 않다.
탄중 페이저로드의 펠라나칸 전문 식당 '블루 진저'는 '퓨전 국가' 싱가포르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펠라나칸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만든 혼합 문화. 이슬람이 꺼리는 돼지고기, 중국인들이 잘 먹지 않는 소고기 등이 모두 쓰인다. 주로 튀기거나 볶는 중국식 요리법에 동남아식 코코넛크림이 들어가 맛이 풍부하고 기름지다. (www.theblueginger.com)
국제도시의 면모에 걸맞은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는 어떨까. 빅토리아스트리트의 레스토랑 '차임스'(www.chijms.com.sg)는 1890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수도원 건물로 섬세한 프레스코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정갈하면서 우아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다국적 푸드센터. 주경기장 근처 '온 더 베이'(On The Bay)는 야경이 멋지다. 시베스(생선의 일종) 정식 디너세트가 4만원선.
홍콩에 처음 세워졌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식당 '이고르'는 임산부나 노약자는 들어갈 수 없다. '록키호러픽처쇼'처럼 기괴한 분장을 한 종업원들이 식당으로 가는 미로 곳곳서 '깜짝 귀신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히트팝과 재담, 음담패설이 뒤섞인 뮤지컬도 공연한다. 관람객도 의자에 올라가 춤추며 맘껏 기분을 낼 수 있다. 입장료는 170SGD. 예약 필수. (www.igor.com)
길거리음식이야말로 여행의 백미. 한두 평 남짓한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차이나타운의 '호커센터'에서는 2,000∼3,000원 남짓이면 쌀국수, 춘권, 닭튀김 등 푸짐한 아침식사를 맘껏 즐길 수 있다. 물론 셀프서비스다. 파 이스트스퀘어의 '야쿤가야 토스트'는 싱가포르인들이 58년간 아침식사를 해온 식당. 구운 빵에 코코넛잼과 버터를 바른 달디단 토스트와 커피, 계란 반숙을 판다.
싱가포르를 떠나기 직전까지 '식도락 천국'을 맘껏 누려보자. 창이공항 인근의 이스트코스트 푸드센터에서는 1인당 3만5,000원 정도면 달착지근한 '칠리크랩', 매콤한 양념의 '페퍼크랩' 등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게요리를 동남아식 볶음밥과 함께 원없이 먹을 수 있다.
/양은경기자
■빌딩숲 곳곳 녹음 우거진 공원 센토사섬·주룽 鳥공원 이색적
공영주차장에도 녹음이 우거진 곳이 싱가포르다. 곳곳에 이름없는 공원들이 빌딩숲의 허파역할을 한다.
섬 전체가 테마파크로 꾸며진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공원문화의 핵심이다. 입장료(6SGD)만 내면 섬을 관망하며 주요 관광지로 이동하는 미니열차를 공짜로 탈 수 있는데 요즘은 음악분수쇼를 하는 야외극장 노선이 단체관람객으로 무척 붐빈다.
물보라와 레이저빔으로 센토사의 꿈과 환상을 노래한 뮤지컬 '매지컬 센토사'(Masical Sentosa)가 상연된다. 배우가 워터스크린에 나타난 장난꾸러기 원숭이캐릭터 '키키'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재치있고 리드미컬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아기자기한 짜임새. 음향, 특수효과 등에 400만SGD를 들였다.
길지 않은 싱가포르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이미지 오브 싱가포르'(Image of Singapore)는 박물관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싱가포르인의 주도면밀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일본군에 함락되는 싱가포르, 페라나칸의 축제 등이 움직이는 밀랍인형과 특수효과로 재현된다. 머리 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입체적인 수족관 '언더워터 월드'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600여종, 8,000여마리의 새가 서식하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주룽 새공원'은 사람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새들이 열대우림을 같이 걸어다니고, 엽서나 지폐도 날라준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져 한, 중, 일 3개국어로 인사를 하는 구관조도 생겼다. 입장료는 12SGD. 24SGD를 내면 뷔페식 아침식사와 새 쇼를 즐기며 새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싱가포르 여행메모
대한항공(080-656-2001), 싱가포르항공(02-755-1226), 아시아나항공(02-669-8000)이 매일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5시간30분 정도.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우기(雨期)로 접어들어 많이 서늘해졌다지만 여전히 낮에는 30도를 웃돈다.
대부분 상점에서 신용카드를 받는다. 숙박료는 특급호텔의 경우 1박에 20∼40만원선. 싱가포르호텔닷컴(www.singaporehotel.com)에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관광청(www.visitsingapore.com, 02-399-5570)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안내서 '스텝 바이 스텝'책자에도 호텔 및 식당 할인쿠폰이 첨부되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