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단일화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후보 단일화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었다는 역사성,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했다는 방법상 특이함, 열세의 판세가 일거에 강세로 돌아서게 됐다는 반전 등이 드라마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단일화가 정치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적 쾌감마저 주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드라마적 현상들이 갖는 취약한 현실성, 과장된 이미지 등 또 다른 문제점도 엿보이고 있다.모든 정치 현상처럼 단일화도 보는 위치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지만, 일단 대권 도전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이해와 기득권을 극복했다는 점은 의미를 부여할만하다. 한국 정치에서는 대선 승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2등이나 3등을 하면 정치적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동안 대선 후보들의 양보나 단일화는 책략의 하나로만 존재해왔지 현실화하지 못했다.
지난 1987년 대선 때만해도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민주세력의 집권이 확실시됐지만,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당시 후보들은 끝내 타협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는 기득권을 포기한 결단으로 평할 수 있고, 양 김씨처럼 주변에 빚을 진 정치적 세력들이 없었기 때문에 단일화가 가능했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아울러 승복의 정치문화를 보게 됐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정몽준 후보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것은 근래 20년의 정치사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러나 단일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대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념이나 정책에 따른 단일화가 아니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이기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정체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정책과 이념, 정치 행로에서 상이한 궤적을 그린 두 후보가 손을 잡은 것은 정치적 이해에 따른 연합일 뿐이지, 명분에 의한 통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단일화가 두 후보의 이념과 정책을 얼버무리는 게 아니고, 단일 후보를 중심으로 주된 노선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체성 논란은 부질없다는 게 반론의 골자다. 더욱이 어느 정당들이나 구 여권의 우파, 구 야당 세력, 재야 출신 등이 섞여 있어 정체성을 논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일화의 공과나 성패는 관념적인 분석 보다는 앞으로의 대선국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역동적 분석을 통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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