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 출신의 유망 벤처기업가 허모(32)씨는 지난해 12월 휴식차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를 찾았다가 회사어음으로 마련한 공금 1,000만원을 카드 도박으로 날렸다. "강원랜드보다 승률이 높은 해외 카지노에서 만회해보라"는 해외 카지노 모집책의 제의에 귀가 솔깃해진 허씨는 올 1월 필리핀 H호텔 카지노를 방문, 운좋게 3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해외도박에 맛들인 그는 같은 달 하순 또다시 H호텔을 방문, 234만달러(한화 약29억원)를 탕진했다가 지난달 상습도박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인기 개그맨·가수 등 유명 연예인들이 거액의 해외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2000년 10월 설립된 강원랜드가 '해외 원정도박의 베이스 캠프'로 전락하고 있는 것으로 검찰수사결과 드러났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5부(이중훈·李重勳 부장검사)는 25일 지난해 12월부터 올 10월까지 필리핀, 마카오 등지에서 상습도박을 벌인 해외원정 도박사범 91명 중 조모(33)씨 등 17명을 외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24명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11개월간 뿌린 도박금액만 무려 8,128만달러(한화 약1,000억원)에 달했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연예인 4∼5명이 원정도박을 일삼은 혐의도 포착, 이중 2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하는 등 수사를 확대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사업자, 가정주부 등으로 강원랜드 개장 후 호기심 차원에서 카지노에 입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필리핀 등의 해외 카지노는 승률이 높은 데다 무료로 숙식도 제공한다"는 등의 달콤한 말로 유혹한 모집책들의 덫에 걸려 해외원정에 나섰다.
검찰관계자는 "국내 고객들은 현지 대출금을 무역거래대금으로 위장한 '환치기 수법'으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밝히고 "필리핀 일간지에 환치기 편의 제공 광고가 버젓이 게재되는 등 현지에서의 자금조달이 수월해 1만달러 이상을 반출한 피의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해외원정도박에 빠진 일부 고객들은 직접 해외 카지노 모집책으로 변신, 국내고객 유치에 나서 원정도박꾼을 새끼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외 카지노업체로부터 1.5%의 수수료를 받는 일부 현지 에이전트들은 국내 조직폭력배와 결탁, 판돈을 미납한 채무자들을 협박해 대금을 갈취하기도 했다. 강원랜드의 한 관계자는 "해외 에이전트와 국내 모집책의 불법적인 영업행위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해외 거액도박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