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사건은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주도한 겁니다." "그렇다면 증거를 내놓으셔야지요."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과 기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대선 정국에 중요한 돌출 변수가 될 듯 하던 이씨가 자청한 기자회견은 그렇게 엉뚱한 해프닝으로 변했다.
2년 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처벌받은 이씨는 지난달 말 갑자기 일본 도쿄(東京)에 나타나 '정 후보 주도'를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자진 귀국해 아들들의 병역면제 비리에 관련된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하면서도 "곧 추가 폭로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이날 회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을 뿐, 이렇다 할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금융감독원이 주가조작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기 전에 현대그룹이 경영전략팀 주재로 대책회의를 연 것이 증거라며 회의록을 제시했으나, 이 '대책회의'는 이미 검찰 수사 당시에도 알려진 일이다. 고작 이런 정도를 기자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기자실까지 찾아왔는지 의아했다.
이런 의문에 대해 이씨의 변호사는 "본인의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좋은 시점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 뜻을 정확히 헤아리긴 어렵지만, 정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단일화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된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창(昌)이 불렀다" "노(盧)가 사주한 것"이라는 등의 갖가지 의혹도 개의치 않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씨는 IMF 사태 직후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바이 코리아' 열풍을 일으켜 일약 경제위기 극복의 공신이자 개미군단의 영웅으로 떠올랐었다. 그 이미지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이미 무너졌다. 그러나 정치판 싸움에 끼어들어 공작 의혹마저 받는 지금 그의 모습은 제2의 김대업(金大業)으로 비친다.
강 훈 사회부 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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