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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점보기 앞 돼지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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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점보기 앞 돼지머리

입력
2002.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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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창업자인 조중훈 전 회장이 며칠 전 세상을 떴다는 부고기사를 보았을 때 옛날 김포공항을 취재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나 당시 대한항공 최고경영자인 조 회장은 초하룻날 새벽에 비행기 앞에 음식과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기계를 부리는 사업주들이 안전을 비는 의식이었지만, 현대 기계문명의 총아인 점보기 앞의 고사는 기자들의 묘한 충동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기자는 새벽같이 카메라를 들고 비행장을 헤매기도 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고사장소를 숨기느라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이곤 했다. 점보기 앞에서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절하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조 회장이 좋아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대한항공의 어떤 간부가 기자들에게 변명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수 백명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 어딘가에 항상 떠 있다. 회장님이 밤에 잠을 마음 놓고 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고사 지낼 때 카메라셔터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께름칙하겠느냐" 당시에는 비행기 사고가 참 많았다. 그래서 항공사 경영자의 이미지는 사고 수습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 항공사업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던 그가 30여년 전 유일한 국영항공을 인수한 것은 행운이었고, 특혜였다. 비록 프로펠러 비행기 몇 대밖에 없던 항공사였지만, 항공사업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독점적 기업환경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에 발동을 걸 때였으니까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사업적 안목이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세대 전의 벤처정신이었다. 그는 민간항공사업의 개척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기업가이다.

■ 그는 항공뿐만 아니라 육상 및 해상운송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확장해서 운송재벌의 일가를 이루었다. 그가 눈을 감았을 때 그의 네 아들은 모두 그가 기반을 닦아 놓은 기업의 총수가 되어 있었다. 한국의 재벌 창업주들이 가는 길이지만 대단한 재산과 파워를 2세들에게 물려주었다. 2세 경영인이 아버지가 물려준 그 힘을 어떤 모습의 회사로 만드는데 쓸 것인지 궁금하다. 대한항공의 이해 관계자는 주주와 종업원만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국민 모두이기 때문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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