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식물들에게 어려운 계절이지만 겨울이어서 더욱 잘 볼 수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고스란히 드러난 나뭇가지의 섬세함이나 하얗게 피어나는 눈꽃, 겨울눈…. 겨우살이도 겨울에 제대로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이름도 겨우살이일까요. 겨울에 푸르다는 뜻의 동청(冬靑)이란 한자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푸른 것이 아니라 언제나 푸른 상록성 나무입니다. 다만 다른 계절에는 다른 푸른 나무 잎새에 가려 나뭇가지에 달린 겨우살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죠. 모든 나무에서 낙엽이 지고 나면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니 겨울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겨우살이 이야기만 들었지 한번도 보신 적이 없다구요? 이즈음 길을 떠나 보십시오. 그리고 멀리서 참나무 숲이 보이거든 바라보십시오. 새 둥지려니 싶은 것 중에 갈색의 죽은 나뭇가지나 볏짚이 아니라 초록의 잎새들이 만들어진 것들이 보인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겨우살이입니다. 기생식물(기생을 하지만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도 하므로 반(半)기생식물이라고도 부릅니다)이어서 나뭇가지에 붙어살기 때문에 그런 모습입니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그 높은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라가 뿌리를 내렸을까 하는 점입니다. 요즘 겨우살이를 보면 노란 구슬같은 열매들이 달려 있습니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이니 새들은 이 열매를 즐겨 먹지요. 하지만 새들의 배속에 들어간 겨우살이 열매들은 완전히 소화되기 전에 껍질만 녹아서 씨앗에 과육을 묻힌 채로 새똥에 함께 나옵니다. 새들에게는 억울한 일이지요. 양분이 되는 것은 없고 껍질을 벗겨주기만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껍질이 제거된 과육에는 접착성분이 있습니다. 하늘을 날던 새에게서 탈출한 씨앗이 나뭇가지에 닿으면 이 과육 씨앗과 함께 굳어지면서 씨앗을 나뭇가지에 단단히 고정시키게 되고 이 상태로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봄이 오면 씨앗에서는 기주(寄主) 식물에서 양분을 빼앗아 올 기생뿌리를 내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새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 박새의 부리 끝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겨우살이 열매를 보셨답니다. 그래서 겨우살이 씨앗이 배설로 나와 퍼지는 것은 틀린 이야기이고 새의 부리에 붙어 멀리 날아가며 새들은 이것을 떼려고 나뭇가지에 비비다가 줄기에 붙게 되어 번식하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사실은 겨우살이 열매들은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랍니다. 제가 이 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모습 역시 수학공식처럼 모든 것이 적용되는 식물들의 모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눈여겨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발견이란 말을 진작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주엔 우리처럼 정말 얌체같이 살지만 알고 보면 바보같은 겨우살이의 모습을 계속 이야기할까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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