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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국토기행](7)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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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국토기행](7)사천

입력
2002.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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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角山)을 오른다. 해발 398m, 경남 사천시 서남부의 나즈막한 이 산 정상에는 백제 무왕 때 축조된 산성과 고려 때부터 사용된 봉화대가 남아있다. 남해 금산에서 올라온 봉화를 받아 내륙의 진주로 이어주던 곳이다. 각산 정상에서는 사천시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사천만이 남강댐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받아내고 있는 너머로 서포, 곤양면의 산과 들이 아련하다. 동쪽으로는 해발 798m로 좀 더 높은 와룡산(臥龍山)이 각산을 마주하고 있고, 두 산자락 사이에 시의 간선도로가 남북으로 뻗어있다. 눈길을 남쪽으로 돌리면 해안가 구시가지의 상가와 주택, 항구에 모여든 어선들이 밀집해있는 것이 보인다. 그 너머가 남해다. 시인 박재삼(朴在森)이 '삼천포 앞바다는 비단이 깔리기 만장(萬丈)이었거니… 오, 아름다운 것에 끝내 노래한다는 이 망망함이여'라고 했던 그 바다이다.사천시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시청으로 갑니다." "어느 시청 말입니꺼?" "…사천시청이요." "시청이 두 군데 있는데예, 사천청사가 있고 삼천포청사가 있고, 나눠져 있다 아입니꺼." 인구 12만이 채 안되는 소도시에 시청사가 두 개?

1995년 5월 10일 2차 통합 시도(93년 1차 통합 시도는 무산됐다)에서 구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해 도농복합도시인 현재의 사천시가 탄생했다. 삼천포라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이로써 영원히 사라졌다. 물론 삼천포항이 있고, 삼천포초·중·고교가 있다. 그러나 제물포가 옛 인천을 가리킬 뿐이듯, 삼천포는 사천시 일부 지역의 사라진 옛 이름일 뿐이다. 사천시는 예산 문제로 아직 통합 시청사를 갖지 못하고 구 삼천포시청사와 사천군청사를 기능별로 나눠 쓰고 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천 출신과 수산업 중심인 삼천포 출신 사람들 사이에 아직 서먹서먹한 감정이 없지 않습니더"라고, 자신을 사천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택시 운전사는 말했다.

하지만 사천시는 달라지고 있다. 각산 정상에서 그 눈부신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시 남쪽 대방동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그 사이 모개섬 초양도 늑도 3개의 섬까지 모두 5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역사인 '대방·창선연륙교' 공사가 착공 8년만에 거의 마무리돼 내년 4월 개통을 앞두고 있다. 1,700여억 원이 들어간 전장 3.85㎞의 다리 5개는 현수교, 트러스교 등 각각이 모두 다른 공법과 디자인으로 지어져 그 자체로도 명물 감이다. 최근 개통된 대전―진주 간 대진고속도로는 사천시내를 거쳐 이 연륙교로 연결돼 수많은 내륙의 관광객과 물류를 남해로 불러들일 것이다.

사천만에도 또 하나의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사천만으로 나뉜 용현면과 서포면은 같은 시계에 속하면서도 육로로 왕복 100㎞ 이상을 돌아가야 했다. 두 지역을 직통으로 이어줄 사천대교는 사천시의 교통과 지역경제에 큰 몫을 하게 된다.

대방·창선 연륙교에서 남일대(南一臺) 쪽으로 가다 보면 삼천포항이 나온다. 남일대가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녘땅 제일의 경승이라 해서 이름붙인 사연은 잊었더라도, 삼천포항을 아는 사람들은 대뜸 쥐치포와 생선회를 떠올릴 것이다. 80년대 초·중반 오징어포를 제치고 '국민의 맛'으로 부상했던 쥐치포의 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옛날에는 그물에 걸리면 밭거름으로나 쓸만큼 앞바다에 넘쳐나던 못생긴 물고기 쥐치를 가공해 포로 만들면서 삼천포항은 흥청댔다. "삼천포 아낙들은 그 때 냉장고 다 샀다"는 말까지 나왔다. 주관홍(50) 삼천포수협 판매2과장은 "하루 2만 상자가 넘는 쥐치가 어판장에 쌓여 그 위를 밟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남획으로 쥐치마저 이 바다에서 사라졌다. 99년 한·일어업협정 이후에는 아예 출어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속출했다.

"그렇더라도 삼천포항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활어야 삼천포를 전국 최고로 치지 않습니까. 남해안 각지의 어민들도 다시 삼천포항으로 만선의 고깃배를 몰아오고 있습니다. 대진고속도로가 뚫렸을 때는 하루 200∼300대의 관광버스가 한꺼번에 이곳 어시장으로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대방·창선 연륙교가 완공되면 삼천포항은 15년 전보다 더한 활력을 찾게 될 겁니다." 주 과장의 말처럼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에 시작해 몇 시간씩 계속되는 어시장 경매를 보다 보면 사천 사람들의 에너지가 감지된다. 감성돔 참돔 돌돔 볼락 우럭 등 철 따라 나는 바닷고기들이 어민과 상인들이 뿜어내는 활기찬 소음과 함께 어판장을 메우고 펄떡거린다. 실제 쥐치 생산 감소로 인해 선어 위판량은 연간 200억 정도로 줄었지만 활어는 350억∼400억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다.

이렇게 바다 쪽으로 난 길과 함께, 사천은 시의 북쪽 사천읍 지역에서 하늘로 향하는 또 하나의 큰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서부경남 하늘의 관문인 사천공항이 들어선 입지조건을 발판 삼아 사천시는 첨단 항공우주산업도시로 거듭나려는 야심을 실현하고 있다. 94년부터 올해까지 사남면 유천리 77만 5,000여 평에 조성된 진사산업단지와 지난해 7월 방지리 일대 44만 5,000여 평에 착공된 서부경남첨단산업단지가 그것이다.

진사단지는 99년 (주)한국항공우주산업이 입주하면서 항공단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인근에 2001년 8월 개관한 항공우주박물관은 사천시가 꾸는 꿈의 상징이다. 1만 4,000여 평의 야외전시장과 305평의 실내전시장은 항공기 18대와 전차 화포,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이 탔던 승용차 등 2,400여 점의 산업·안보 전시물을 갖추고 사천 지역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산학 연계를 위한 항공기능대학도 사천시 최초의 대학으로 지난해 개교했다. 내년이면 5개 학과 48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경남도내 10개 시 중 가장 적은 인구의 사천시가 외자 유치에서는 1위라는 사실도 이 도시의 열의를 짐작케 한다. 스웨덴의 유명 트럭·버스 제조업체 스카니아를 비롯해 일본의 전자부품업체인 태양유전, 한·독 합작 EEW성화산업, 영국의 담배제조업체 BAT코리아 등 다양한 분야의 10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 중이거나 조성 중이다. 서부경남첨단산업단지는 1,733억 원을 들여 항공기 부품을 비롯해 전기, 전자, 재료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사천시는 이들 기업의 입주에 맞춰 진사단지 인근에 외국인 마을과 내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외국인 학교의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조선 숙종 당시 '사천현여지승람'은 이곳의 풍속과 사람들의 기질을 '속상무예(俗尙武藝) 풍속강한(風俗强悍)'이라 기록했다. 내륙인은 무예와 농잠을 하며 검소하고 솔직하고, 해안 사람들은 풍속이 강하고 굳세다는 의미다. 통합된 사천시의 그 사람들은 이제 고장의 명산인 와룡산에 비유해서 "누워있던 와룡이 비룡(飛龍)으로 날아가려 한다"며 미래를 말하고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박재삼의 詩는 사천의 큰 유산"/ 후배 최송량시인

사천을 이야기하면서 고 박재삼(1933∼1997) 시인을 지나칠 수는 없다. "박재삼처럼 제 고향을 아름답게 노래한 시인은 없다. 앞으로 백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처럼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애태우던 시인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 한 민영 시인의 말처럼 그는 삼천포와 사천을, 또 이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한국 사람의 정한을 시로 승화시킨 사람이었다.

박 시인의 삼천포 초중고교 후배로 사천시사 편찬위원인 시인 최송량(62)씨와 함께 그의 흔적을 돌아봤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던가/ 바닷가에서 자라/ 꽃게를 잡아 함부로 다리를 분질렀던 것/ 햇빛에 반짝이던 물꽃무늬 물살을 마구 헤엄쳤던 것'( '신록을 보며'에서)이라 했던 그는 현 사천시 동서금동 팔포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의 생가 바로 앞 바다는 최근 매립돼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줄지어 들어섰지만 그의 싯귀대로 '화안한 꽃밭' 같이 여전히 눈부신 풍광이다. 최씨는 "팔포매립지 해안도로가 '박재삼 시인의 거리'로 명명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생가 바로 옆 작은 구릉인 노산(魯山)에 올라가보면 그가 노래했던 삼천포 바다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소싯적 꾸중을 들은 날은/ 이 바다에 빠져드는 노산에 와서/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와/ 물비늘 반짝이는 것/ 돛단배 눈부신 것에 혼을 던지고 있었거든요// 이제 나를 꾸짖는 이라곤 없이/ 심심하게 여기 와서/ 풀잎에 내리는 햇빛/ 소나무에 감도는 바람을/ 이승의 제일 값진 그림으로서/ 잘 보아 두고… '라 했던 곳. 아버지는 지겟일 가고, 광주리 이고 해물 팔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소년의 가난과 그가 보았던 자연은 한국 사람의 핏속으로 흐르는 기억이다. 그는 그 기억을 나중에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던 자신의 삶과 시에서 모두 끌어안고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으로 남았다.

최씨 등 사천 지역의 문인들은 박 시인의 시 중 고향과 관련된 작품 110여 편을 따로 모아 '우리 고향 우리 집'이라는 시선집을 올해 4월 펴내기도 했다. "전쟁 때 학교 내주고 이 노산 소나무숲에서 수업했지요. 우리 키만 하던 소나무가 벌써 몇 길로 이렇게 자랐습니다." 박 시인의 별세 직후 쓴 '재삼이 성님 보내시고/ 연이틀 내가슴에 비가 쏟아져'라는 자신의 시를 들려주며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는 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님의 시는 사천의 무엇보다 큰 유산이고 자산입니다."

/하종오기자

■사천시 현황 2002년 10월말 현재

면적 396.98㎢

인구 4만 344세대 11만 7,943명

위치 동 고성군, 서 하동군, 남 남해군, 북 진주시

행정구역 1읍 7면 6동

예산규모 2,324억 4,500만 원

산업인구 농가 8,694호 2만5,260명 수산가구 4,840호 1만 6,220명 기업체 332개 7,796명

문화재 매향비, 비자나무, 가산오광대, 늑도패총

특산물 생선회, 단감, 쥐치포, 백합죽

관광자원 남일대, 노산공원, 와룡산, 다솔사, 죽방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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