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가까이 미궁에 빠졌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타살로 밝혀졌지만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정신이상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물론 올해 주택가에 20여 차례 불을 지른 연쇄방화 사건이나 이틀 동안 여섯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뒤 목졸라 숨지게 한 연쇄살인 사건도 한때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몰아 붙였다. 하지만 나중에 잡힌 진범들은 하나같이 정신과는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멀쩡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신이상자를 들먹이는 걸까? 아마 매스컴이나 영화 등을 통해 '정신이상자=범죄자'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우리 뇌리에 심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정신병을 너무 모른다는 데 있다. 한때 북한 사람은 모두 뿔난 도깨비로 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니와 아시안게임 이후 북녀(北女)를 흠모하는 남남(南男)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정신이상자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인데도 왜곡된 정보 때문에 뿔난 도깨비로 전락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이상자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일반인들이 정신이상자보다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자가 범죄성향이 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소심한 사람들이다.
수년 전 TV 뉴스 생방송 도중 "내 귀에 도청장치가 달려 있다"며 전대미문의 방송사고를 낸 정신분열증환자가 있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뉴스시간에 전 국민을 상대로 도움을 호소했을까? 그들은 약자다. 약자이기에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섣부른 추측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듯싶다.
/정찬호 정신과전문의·마음누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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