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세대 창업자들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경영권에 집착했던 창업자들은 불명예 퇴진한 반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대폭 넘겨주는 방식으로 기업을 키운 창업자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새롬기술 오상수(吳尙洙·37) 전 사장은 경영권 집착으로 화를 자초한 대표적인 경우. 오 전 사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다이얼패드를 정상화한다며 새롬기술 대표자리를 사임하고도 7개월 만에 번복, 대표이사에 복귀했다. 그는 또 한때 동지였던 새롬벤처투자 홍기태(洪起泰·45) 사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유지분을 담보로 우호세력을 끌어들였으나 주가하락으로 지분의 30% 가량을 날려 경영권과 함께 최대주주 지위도 잃었다.
엔터테인먼트 포털사이트 인츠닷컴 창업자인 이진성(李鎭成·35) 전 사장도 지난해 8월 사임한 뒤 공금 횡령 혐의가 밝혀져 사법처리를 받았고,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벤처 1세대의 주축으로 떠올랐던 김진호(金鎭浩·34) 골드뱅크(현 코리아텐더) 전 사장도 대표 재직시절 공금 횡령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반면 더큰 도약을 위해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팬택 박병엽(朴炳燁· 40) 부회장이나 더존디지털웨어 김택진(金澤鎭· 46) 전 사장 등은 여전히 건재하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김택진 전 사장은 회계전산프로그램 개발업체인 더존디지털웨어 창업자. 그는 그러나 뉴소프트기술과의 합병을 추진하는 등 소형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더존디지털웨어가 중견기업으로 발전하자 대주주 신분(지분 27%)을 유지한 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 전 사장은 대신 지난 8월 삼고초려 끝에 정보기술(IT)업계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인 김재민 전 한국마이크로스프트 사장을 영입했다. 더존디지털웨어의 올 3·4분기까지 매출액은 18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가운데 영업이익도 50억2,000만원에 달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국내 3위 이동통신 제조업체인 팬택도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과 전문경영인의 조화로운 경영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 9월말 현재 팬택 지분의 19.91%를 보유한 박 부회장은 대주주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팬택, 팬택&큐리텔 등 계열회사의 경영은 모두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있다. 박 부회장은 팬택의 경영은 삼성전자에서 영입한 이성규 사장에게,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설립한 팬택&큐리텔은 송문섭 사장에게 권한을 상당부분 위임한 상태이다.
가톨릭대 이동현 교수는 "기업 규모에 따라 CEO의 역할이 달라진다"며 "10여명 안팎의 직원으로 출발한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창업자들이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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