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용 픽업트럭 차량에 대한 특별소비세 부과 방침이 불과 1개월여 만에 "없던 일로" 돼 버렸다.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해보고 두 손, 두 발 모두 들어버렸다. 줏대없는 정책으로 정부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셈. 더구나 법 개정 사실을 끝까지 '쉬쉬'하면서 피해는 이미 300만∼400만원에 달하는 특소세를 물고 차량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졌다.■사건의 전말
쌍용자동차가 9월 신개념 차량 '무쏘스포츠'를 공개하면서 일대 돌풍이 일었다. 승차 인원은 일반 승용차와 같으면서도(5명) 400㎏의 화물까지 거뜬히 실어 나를 수 있게 설계됐다. 가장 큰 매력은 자동차관리법 상 화물차로 형식 승인을 받아 300만원을 넘는 특소세를 전혀 물지 않아도 된다는 점. 출시를 앞두고 사전 예약만 3만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국세청이 '무쏘스포츠' 차종에 대해 재정경제부에 유권 해석을 의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적재 중량 등 형식 요건만 충족하면 화물차로 분류하는 자동차관리법(건설교통부)과 용도에 따라 차종을 결정하는 특별소비세법(재정경제부)이 정면 충돌했기 때문. 재경부는 쌍용차와 고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2일 "'무쏘스포츠'는 화물보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며 승용차로 분류, 14%의 특소세 부과를 결정했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불똥은 통상 문제로 번졌다. 미국측이 유사한 사양과 제원의 '다코타'(다임러크라이슬러)에 대한 특소세 부과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 미국측이 21∼22일 열린 '한미 통상현안 점검회의'에 주요 의제로 올려놓고 한국 정부에 으름장을 놓자, 결국 정부는 법을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번복했다.
■의혹 투성인 법 개정
정부는 법 개정이 통상 압력 때문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재경부 최경수(崔庚洙) 세제실장은 "무쏘스포츠에 대한 판정 직후 기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법 개정에 착수했으며, 미국 통상 압력 때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화물차에 대한 특소세 면제 취지를 감안할 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을 세법상 화물차로 분류한 해명치고는 몹시 궁색하다.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결과적으로 고객을 우롱했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정부 정책을 믿고 비싼 세금을 낸 고객만 억울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더기 해약 사태에도 불구하고 22일 현재 무쏘스포츠 판매 대수는 1,782대. 재경부의 유권 해석도 받기 전에 마치 특소세가 면제되는 것처럼 차량을 선전해 온 쌍용차도 도덕적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전망이다.
법을 개정하면서 그간 또 다른 논란을 빚었던 9∼10인승 승합차에 대한 상충된 법 규정을 방치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특소세 과세대상이 되는 승용차 기준을 특소세법은 8인승 이하로, 자동차관리법은 10인승 이하로 엇갈리게 규정한 것도 특정 업체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는 "조세연구원 용역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중 법을 손질할 계획"이라지만, 업계는 "트라제XG, 카니발 등 특소세가 면제되는 9인승 승합차를 판매하는 현대·기아차 그룹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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