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본의 대학으로 연수 갔을 때 할인점을 처음 보고 신기해 한 적이 있다. 요즈음에야 우리나라의 동네마다 할인점이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재래시장이나 기껏해야 슈퍼마켓이 고작이던 때였다. 물건을 살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 주고 다음 번에 쇼핑할 때 쌓인 포인트만큼 물건값을 깎아주는 맛에 열심히 할인점을 드나들던 기억이 난다. 할인점마다 새로운 기획 상품을 선보이고, 고객들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 '가격파괴'란 말이 유행한 것도 이 시기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할인점이 등장한 것이 1993년인데도 유통산업의 주도권은 할인점으로 넘어간 지 이미 오래다. 재래시장은 마을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동네 슈퍼마켓은 대형 할인점 위세에 밀려 폐점하는 곳이 줄을 잇는다. 총 매출액 우위로 근근히 체면을 유지하던 백화점조차 올해 들어 할인점에게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유통업계에서는 2005년에는 할인점 시장규모가 29조원, 백화점이 20조원으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할인점 약진의 비결은 백화점 가격의 거품을 뺀 상품의 염가공급과 박리다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살 때마다 가격의 일정 비율을 포인트로 적립해 주거나, 물건값을 환급해 주는 마일리지 서비스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항공회사에서 시작돼 유통업체에서 빛을 본 마일리지 제도는 이제 신용카드·통신업체는 물론 커피전문점과 중국집, 구두닦이점이나 이·미용실 등 동네 구멍가게까지 확산돼 '마케팅의 총아'로 자리잡았다.
■ 그러나 정작 이 마케팅 정책의 원조 격인 항공회사들은 마일리지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이용객은 늘었지만 눈덩이처럼 쌓인 마일리지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984년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대한항공의 누적 마일리지는 800억마일, 아시아나항공은 400억마일에 이른다고 한다. 218만여명이 인천∼뉴욕 노선의 일반석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물량으로 금액으로는 3조원이 넘는다. 오죽하면 항공업계가 마일리지 사용기간 시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을까. 불이익을 당하기 전에 그동안 쌓인 마일리지를 이용해 겨울휴가라도 다녀올 일이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