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유조선 프레스티지호의 기름띠가 서유럽을 계속 무서운 기세로 휩쓸고 있다. 15일 프레스티지호가 스페인 북서부 대서양에서 좌초될 때 유출돼 이틀 만에 스페인 해안에 도착한 연료용 중유는 이미 300㎞ 일대의 조류 수백 마리와 어류 수만 마리를 질식시켰다. 하지만 본격적인 기름띠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연쇄 기름띠 공포
15일 유출된 4,000여 톤과 19일 선체가 두 동강나면서 침몰할 때 흘러나온 6,000여 톤의 중유는 거대한 띠를 형성, 앞으로 수 개월에 걸쳐 모로코,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등 서유럽 해안을 연쇄적으로 강타할 전망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데즈퀴엘 나퀴오는 이중 10%만 해안에 도달해도 이 지역 해양 생태계가 90% 이상 파괴될 것이며, 19일 유출분이 스페인에 1차로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21일이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일 스페인 북서부 케이프 투리난에서는 국제조류보호연맹(LPO)에 의해 멸종 위기종으로 등록된 퍼핀새 수십 마리가 폐사된 채 발견됐다. 이 새는 전 세계적으로 2,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이다.
'심해의 시한폭탄' 제거 희망도 무너졌다. 네덜란드의 해난구조회사 SMIT는 20일 중유 6만7,000여 톤을 싣고 침몰한 프레스티지호를 인양하거나 기름을 퍼올리는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디아 밴 안델 대변인은 "수심 3.5㎞ 깊이의 낮은 온도 때문에 기름이 굳어지길 바라지만, 응고된 기름과 해수가 일으키는 화학작용만으로도 해저 생태계에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기름 7만 톤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250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지지부진한 복구 작업
현재 기름띠는 예상보다 1.5배 정도 빠른 시속 1㎞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기름 제거 작업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사고 지역이 서로 자국의 영해를 벗어났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또 배의 소유주인 라이베리아의 마레사, 운영자인 그리스의 유니버스 마리타임사, 중유의 소유주인 러시아 알파 그룹, 런던의 보험회사 및 검사·정비를 맡은 미국의 ABS사 등이 보상 문제를 놓고 다투는 사이 자원봉사자 등이 삽 등 후진적인 장비로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일 '재해 복구 유럽연대 기금'을 피해지역에 지급하고, 2015년으로 예정된 해양 재해 관련법의 시행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법에 따르면 선체 외피가 한 겹이어서 기름 누출 사고에 치명적인 구식 유조선과 선령 20년 이상의 노후한 선박들은 5년 안에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린피스의 데이비드 산틸로 대변인은 그러나 "관련법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99년 프랑스 북부해안에서 발생한 유조선 에리카호 사고 직후에 제기된 것이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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