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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53)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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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53)잭 런던

입력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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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1월22일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이 40세로 작고했다. 지나친 알코올 탐닉으로 갖가지 병을 앓고 있었던 그가 병사했는지 자살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런던은 가난하게 태어나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작가로 살다가 빚더미 속에서 죽었다. 떠돌이 점성술사의 사생아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신문배달원에서 바다표범잡이 배 선원에 이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런던은 타고난 총명함에 기대어 속성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0세에 캘리포니아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도 반년 만에 그만두어야 했지만, 그는 부지런한 독서로 미국 지식인 사회의 버젓한 일원이 되었다.부지런함은 런던의 숙명이었다. 그 부지런함은 고된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성장기만이 아니라 단편집 '이리의 아들'을 내며 작가로 등단한 1900년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 때부터 작고할 때까지 16년간 그는 소설과 논픽션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책을 냈다. 그 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베스트셀러가 돼 런던에게 명성과 돈을 안겼다. 그러나 런던은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많은 연설과 신문 기사를 통해서 그는 자신이 견결한 사회주의자임을 공언했지만, 한편으로 호사스러운 대저택에 살며 초호화 요트 여행을 비롯해 온갖 사치를 즐기던 전형적 부르주아이기도 했다. 그가 죽었을 때 '샌프란시스코 불리틴'은 "마크 트웨인을 빼놓으면, 잭 런던만큼 낭만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없다"고 썼다.

런던은 그 시대의 서양 작가들 가운데 한국을 방문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1904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기자로 조선을 방문해 YMCA 주최로 대표작 '황야의 절규' 낭독회를 가졌고, 일본군을 따라 러일전쟁을 취재하면서 조선에 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고 종 석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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