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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흥행 실패한 2002대선

입력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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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밖에 남지 않은 대선정국은 어지럽기만 하다. 누가 후보인지 대진표조차 짜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뚜렷한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회창 대세론과 반(反)이회창 정서를 집약한 후보단일화를 중심으로 번잡한 이합집산만이 있을 뿐이다. 선거가 국민의 축복속에 치러지는 민주주의 축제라는 교과서적 정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대선정국의 혼란상과 의리 없고 무원칙한 정치인들의 행보가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중시키고 있다.이회창 대세론은 절대적 지지보다는 상대방에 실망한 반사적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활기가 부족하다. 대세몰이의 대상도 철새정치인과 염불보다는 잿밥에 정신이 가 있는 직능단체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주대상이다. 이 후보 진영은 3김식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이회창 대세론의 대척점에 있는 후보단일화도 마찬가지다. 단일화는 이념과 정책의 동질성에 기반한 게 아니다. 3파전으로 가면 둘 다 죽을 게 뻔하니까, 그나마 살기위해 마지못해 손을 잡자는 것이다. 협상이 우여곡절을 겪고 야합이라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회창 떨어뜨리기'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승리지상주의다.

이처럼 이번 대선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뒤 치러지는 4차례의 선거 중 가장 재미없는 싸움이 돼가고 있다. 미디어 선거의 총아라는 TV토론의 시청률이 한 자리 숫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중의 관심은 대선보다는 아파트 값이나 수능시험 등 일상적 사안에 더 집중돼 있다. 모든 국민이 마치 대선이 전부인양 죽기 살기식으로 덤비지 않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5년 동안 나라를 끌고 갈 최고통치자를 결정하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보면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이번 대선은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흥행에 실패했다.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후보들에게 있다. 자신의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서로를 헐뜯기나 하고, 무차별 폭로전으로 선거판의 분위기를 흐렸다. 이런 판국에 이슈가 부각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87년 대선은 민주 대 반민주, 92년 대선은 김대중·김영삼 두 김씨의 재대결과 정주영 후보의 등장, 97년 대선은 정권교체라는 뚜렷한 이슈와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단골후보였던 두 김씨는 비토그룹도 많았지만, 어쨌든 열광적 지지자도 상당수 있었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등 3명의 유력후보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가 이곳 저곳에서 들린다. 심지어는 대선의 최우선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조차 이 같은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선거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후보가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내리는 결론은 우리는 아직은 지도자 복(福)이 없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고수하며 대세몰이를 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는 40% 이상의 지지를 넘지 못한 채 반(反)이회창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는 역대의 유력 대통령후보 중 가장 강한 비토그룹에 휩싸여 있는 셈이다. 국민 참여경선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노무현 후보는 자기 당에서조차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해, 국민경선을 스스로 부인하는 후보단일화에 나서야 했다. 정제되지 않는 행동과 리더십 결핍은 그가 과연 준비된 후보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월드컵 신화를 정치판에서 재연하겠다는 정몽준 후보는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한 채, 단기필마 혼자서 뛰고 있다. 정 후보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고, 대통령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흥행에 실패한 대선은 누가 당선되더라도 취약한 대통령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선보다도 대선 이후가 더 걱정되는 이유다.

이 병 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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