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봐야지 하면서 못 가고 있는 곳이 안국동에 문을 열었다는 '아름다운 가게'다. 나에겐 필요없어도 남에겐 꼭 필요한 물건들을 기증받아 싸게 파는 가게라는데, 신뢰할만한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 쓸만한 물건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그 기본 취지의 아름다움 때문에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단다.'아름다운 가게' 소식에 반색을 한 것은 평소 이런 장소나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같은 운동이 확산되면 '아무거나 잘 버리는 문화'도 자연스레 고쳐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다.
6개월을 넘지 못한다는 가전제품의 디자인 사이클, 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TV드라마 속 저택들, 지하철을 탈지언정 백만원짜리 핸드백 하나쯤은 꼭 들고 다녀야하는 명품족들…. 우리들에게 '새 것=앞서 가는 것, 절약=구질구질한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쉽게 손에 넣고 쉽게 버리는 풍조가 인간관계나 사회전반의 분위기까지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생생한 사례가 지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판이다. 우리에게 수백년은 고사하고 수십년이라도 생명을 이어온 정당이 있었던가. 내가 투표권을 갖게 된 후 생긴 정당들은 이제 그 이름도 기억할 수 없다. 글쎄 거꾸로 헤아려 가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통합21, 자민련… 그리곤 뭐였더라. 앞으로 우린 또 얼마나 많은 이름의 당들을 만들었다 버리게 될까.
독일에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 하나는 갓 귀국했을 무렵, 아파트를 새로 꾸민다고 멀쩡한 가구를 내다 버리는 이웃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독일 주부들은 가구, 부엌용품은 물론, 커튼까지도 대를 물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러다 보니 생활속에 녹아있는 전통도 함께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거지. 경제력보다는 이런 작은 부분들이 그들의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어."
그동안 우리가 대물릴 만큼 근사한 살림살이 쓰고 살아온 건 아니잖아, 궁색한 변명을 떠올려 보지만 지금 우리집만 둘러보아도 결혼할 때 마련해온 물건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기실 우리가 해온 것은 숨가쁘게 사들이고 숨가쁘게 버린 것이 전부는 아닌지…. 포근한 주말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한번도 쓰지 않은 찻잔 세트를 곱게 싸들고 '아름다운 가게'를 찾아봐야겠다.
/이덕규·자유기고가·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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