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에 발생한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된 제주도민 중 1,715명이 반세기 만인 20일 처음으로 희생자로 결정돼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4·3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를 놓고 긴 진통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인권신장과 민주 발전뿐 아니라 국민화합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 과거 이념적 반목과 갈등으로 빚어진 현대사의 비극을 정리하고 화해의 시대를 연다는 상징적 조치의 의미가 있다.이날 결정은 2000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접수한 4·3희생자 사망 1만715명, 행방불명 3,171명, 후유장애 142명 등 총 1만4,028명 가운데 시·군의 사실조사와 심사소위 회의를 거친 1,801명을 대상으로 우선 이뤄졌다. 또 첫 결정이라는 점을 고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수형자 등은 이번 심사대상에 아예 포함시키지 않았다.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희생자 규정을 '4·3 당시 무력 충돌과 진압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으로 정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미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86명이 이날 결정에서 유보된 것도 선정 기준에서 벗어났다기 보다는 '이중 명예회복' 논란 때문이었다. 위원장인 김석수(金碩洙) 총리는 "첫 결정을 내리는 회의인 만큼 무엇보다 전원합의가 중요하다"면서 "이견이 있는 86명에 대한 결정 여부는 소위원회에서 더 검토하자"고 말했다.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희생자 범위를 놓고 우여곡절도 있었다.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 등 보수진영은 특별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고 특별법 폐기 청원을 하는 등 제동을 걸었다. 헌재가 지난해 9월 "특별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이유없다"며 이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하고 나서야 위원회 활동이 탄력을 받았다.
위원회는 이후 유족회와 군·경 단체간 의견을 절충, 6차례의 회의를 거친 끝에 올해 3월 4차 전체회의에서야 심의결정기준을 확정했다.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 군·경 진압에 주도적으로 대항한 무장대 수괴급, 살인 방화 적극 가담자 등은 제외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수형자를 희생자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충분한 심리없이 형식적인 재판으로 단죄된 만큼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수진영이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유족 단체들은 "명예회복의 물꼬를 튼 결정이란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실체없는 재판을 받아 희생당한 수형인이 결정 대상에 오르지 않은 것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