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은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100만 달러(12억5,000만 원)를 기부하겠다고 한다면 뉴욕 맨해튼에 살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증권 분석가가 영향력 있는 은행가에게 잘 보여 자기 아이를 좋은 유치원에 편법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특정한 주식을 추천하는 행위도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하지만 맨해튼 북동부(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는 이 같은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벌어진다. 최근 뉴욕에서는 일부 부유층과 유명 인사들이 아이들을 맨해튼 북동부 92번가에 있는 Y센터 부설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1874년 독일계 유대인 교수와 사업가들이 설립한 Y센터는 각종 헬스시설과 전시실, 어학교실 등을 갖춘 맨해튼 최고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 부설된 유치원이 바로 뉴욕 상류층이 자기 아이를 입학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곳이다.
Y 유치원은 해마다 입학철이 되면 자녀를 들여보내려는 부모들의 치맛바람이 거세다. 매년 3∼5세 어린이 65명을 뽑는 이곳에 300여 명의 지원자가 쇄도하고, 원서교부일에는 한 시간도 안돼 지원서가 동이 난다. 한 해 수업료는 웬만한 대학과 맞먹는 1만5,000달러(1,900만 원)에 달한다.
과도한 입학열기는 부모들의 부정까지 부르고 있다. 유명한 증권 분석가 잭 그루브먼은 최근 자신이 일하는 씨티그룹의 샌포드 웨일 회장의 압력으로 AT& T사 주식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려주었다. 보답으로 웨일 회장은 그루브먼의 쌍둥이 자녀가 Y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유치원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치원 원생의 학부모는 유명 인사들로 가득하다. 가수 스팅과 영화배우 마이클 J 폭스, 케빈 클라인, 피비 케이츠, 뱅크원 그룹의 제임스 디몬, 시그램 가문, 에스테 로더 가문 인사 등이 끼여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신 나간 경쟁이 촉발된 이유는 무엇일까.
급속한 부의 증가와 도심 지역의 베이비 붐이 결합된 것이 한 이유다. 맨해튼과 같은 부촌에는 최근 자녀 유치원 수업료로 한 해에 1만5,000달러를 기꺼이 낼 수 있는 사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명문대 입학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잘 사는 부모들은 명문대 입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명문 고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데 점점 신경을 쓰게 됐다.
더욱이 대부분 사립학교들은 일단 들어온 학생들에게 고교 3학년 때까지 계속 진학지도를 하기 때문에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대학 입학 전까지의 교육은 어린이가 네 살 때 치는 유치원 입학시험 성적 여부에 달렸다고 믿기도 한다.
이 말은 결국 학부모들이 특정 유치원을 선호하는 이유가 유치원의 교육수준이 아닌 다른 데 있음을 의미한다. 유치원 입학 경쟁이 과열인 이유는 유치원 학사 담당자가 학생들을 앞으로 명문 사립 중·고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생각 때문이다. 명문 사립 고교 졸업생의 아이비 리그(동부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뚤어진 열기에 대한 해결책을 공교육에서 찾는다. 뉴욕시에는 수 십 개의 좋은 공립고교가 있으며, 특히 북동부 지역에만 해도 대부분의 명문 사립고교와 어깨를 겨룰 만큼 교육 수준이 뛰어난 공립고교들이 있다.
이들 공립고교의 명문대 입학률은 명문 사립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명문 공립고교 입학 경쟁 역시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같은 공립고교의 존재는 부모들에게 자녀가 명문 사립 유치원에 뜻대로 입학하지 못했다고 해서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으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위안을 준다.
클라라 헴필 미국 뉴욕 교육전문가/NYT 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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