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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하얀마을에서는 도시의 시계가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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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하얀마을에서는 도시의 시계가 멎는다

입력
200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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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62)는 언제나 길에서 시작한다. 민둥산이나 바위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그 길을 지나서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의 어린 소년을 만나고, 올리브나무 숲에서 한 청년의 소박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길은 이란 사람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그 마음을 세상에 알려주는 방식이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꾸밈이 없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 나오는 시어 다레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농부는 지나가는 지프차를 흘끔 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마을에서 찻집을 하는 노파는 "여자의 삶은 3중고"라면서 "내 차는 당신 피로를 덜어주지만, 내 피로는 누가 덜어주냐"고 투덜댄다.

주인공 베흐저드(베흐저드 도우러니)의 유일한 친구이자 안내자인 마을 소년 파흐저드는 "학교에 가야 한다"며 걸핏하면 카메라에서 사라진다. 묘지들이 있는 마을 산꼭대기에서 구덩이를 파는 청년과 사랑하는 16세 소녀는 부끄러워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머무는 집의 여자는 10번째 아이를 낳고는 태연하게 빨래를 널고, 아이들은 양떼를 몰고 사라진다. 검정 고무신에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싼 아낙들은 집 앞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베흐저드가 휴대폰 벨이 울릴 때마다 통화가 되는 산꼭대기로 부리나케 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볼 뿐이다.

전화도, 전기도 없는 마을. 세상과 단절된 가파른 산기슭에 계단과 사다리로 이어진 흙집을 짓고, 여름이면 농사짓고 겨울이면 여자들이 세 번째 일(임신)을 하는 하얀 마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전통 장례식을 찍어가기 위해 전화기술자로 신분을 속이고 마을을 찾아온 테헤란의 청년 베흐저드가 삶의 지혜를 발견해 가는 이야기이다.

테헤란에서 오는 재촉 전화를 받기 위해 매일 급하게 산으로 오르고, 아파 누워있는 100세 할머니의 죽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주인공과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는 마을 사람들. 영화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둘을 끝없이 반복해 대비 시킬 뿐. 그리하여 마침내 관객조차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면 베흐저드는 떠나고 감독은 카메라를 거둔다. 그날 아침 할머니가 죽었다.

이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시인 포루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두 가지 다른 삶 속에서 찾아낸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그 시간의 절대 길이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같지만 마음에 따라 그 길이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간 속에 있는가. 1999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22일 서울 시네큐브 개봉. 전체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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