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3번가에 위치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국에는 집행 이사국인 한·미·일 3국과 유럽연합(EU)에서 파견된 3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내년 2월이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KEDO에 지급해 온 행정 분담비를 더 이상 낼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미 정부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을 어겨 의회로부터 KEDO 관련 예산을 승인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강력한 대북 압박 수단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조치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운영비 분담 불가 운운하는 속내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1994년 제네바 핵 합의의 산물인 KEDO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
당초 미국이 경수로 1기 완성 때까지 중유를 북한에 공급하기로 한 것은 경수로 건설의 막대한 재원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국에는 '중심적 역할'을, 일본에 '상당한 기여'의 책임을 지우고 자신들은 최소한의 '상징적' 비용이 드는 중유 공급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3년이 목표였던 경수로 완공이 늦어지고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미국의 예상은 빗나갔다. 10년에 10억 달러가 들어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결국 북한의 우라늄 핵 개발 시인은 미국 내 강경파들에게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도 못하면서 돈만 쏟아붓는 제네바 핵 합의의 무거운 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KEDO 사무국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경수로 건설 사업비용의 70%를 부담하며 한반도 문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려 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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