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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에서 문학을 본다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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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껏 문학을 지켜온 울타리는 엘리트 의식이었다. 문학이야말로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 최고의 존재'라는 믿음을 단단한 받쳐준 예술 형식이었다. 이른바 '하위 문화'가 어느 때보다도 밝은 햇빛을 받게 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도 문학의 신념은 큰 부침을 겪지 않았다.그런데 최근 문예지들이 문학과 바로 그 하위문화와의 관계 맺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문학을 문학 바깥의 대중 매체들과 같은 자리에 놓은 것이다. 순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지가 하위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대중 장르가 주류 문화로 부상한 이후 처음이다.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는 '다매체 시대의 서사적 감수성'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선보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공포영화, 컴퓨터게임과 소설이 분석 대상이 되었다. 이질적인 네 분야를 엮는 것은 소설의 '서사' 개념이다. 김종엽(38) 한신대 교수는 '에반겔리온'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고 규정한다. 소설 이론을 빌려 '열린 텍스트'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문임(33)씨의 기고문 '여귀(女鬼)의 부활과 트라우마적 기억'은 한국 공포영화의 서사의식의 변화를 짚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 공포영화가 놀랍고 괴기스럽기는 해도 비현실적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 많다. 특히 현실성을 갖게 하는 매개로 제3의 관찰자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는 백씨의 설명은 문학 작품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평론가 김진량(36)씨도 '컴퓨터게임 읽기를 위한 시론'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문학적인 분석틀로 파악한다. 이야기 공간에서 펼쳐지며 인물 배경 사건이라는 구성 요소를 갖는다는 것 등이 근거이다. 황종연(42) 동국대 교수의 평론 '대중 사회의 도상학'은 문학 작품의 서사성을 추출하되, "영상 문화가 우세한 대중의 생활에 확고한 근거를 두고 있음" 또한 발견한다. 문학에 스민 하위 문화의 징후를 찾아내고 인정하려는 것이다.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 특집의 주제는 '21세기 문화, 낯선 인간 속으로'이다. 이 기획은 문학과 만화 SF 등에 나타난 '괴물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췄다. 만화비평가 이명석(30)씨가 '종이와 기계와 괴물'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일본만화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괴물의 유형을 살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프랑켄슈타인' '에일리언' '600만불의 사나이'등 소설과 영화 TV시리즈를 넘나들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괴물의 사회적 의미를 점검했다. 하위문화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괴물성이 문학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의 문제는 김태환(35)씨의 평론 '이야기에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소설에서 전통적인 인간적 가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고, 등장인물의 모습도 크게 변화했다. '문학과사회'의 특집은 이렇듯 문학작품에서 괴물에 가까운 주인공이 출현한 배경을 하위장르에 나타난 '괴물성'의 통찰을 통해 찾아보려는 것이다. "문학이 대중 문화와 교감하고 소통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해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문예지의 기획 의도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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