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중국 공산당 새 지도부의 사진이 신문 1면에 크게 실렸다. 신임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베이징 인민대회당 무대에 나란히 서서 웃음 띤 얼굴로 손을 흔들고 박수치는 모습이다. 70대 원로들을 물갈이한 60대 젊은 지도부답게, 자신감과 유연함을 함께 내비친다.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상징하는 듯 하다.그러나 검은 머리에 검은 양복, 붉은 색 넥타이 일색인 것이 백발의 혁명 원로들이 즐비하던 옛 모습에 비해 오히려 생경하다. 6,000만 당원과 13억 인민에게 선보이는 무대인지라 머리 염색 등 코디네이션에 신경 썼는지 모르나, 마치 잘 선별해 키운 재벌그룹 사장단 같은 인상을 준다. 거대국 중국의 역사적 도전을 감당할 통치 집단으로는 권위와 무게가 떨어진다.
이런 느낌이 주는 의문을 천착할 겨를도 없이, 공산당 중앙위가 전임 총서기 장쩌민(江澤民)을 중앙 군사위 주석으로 다시 뽑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중국 개혁의 설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그랬듯이, 군권(軍權)을 계속 쥐고 개혁을 막후에서 지원할 것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이 다시 인용되고, 장쩌민이 '반퇴'(半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정에 대한 해설이 구구하다.
그러나 중국에 정통한 관찰자들은 16차 공산당 대회는 공산 혁명당이 전문가 집단으로 환골탈태했음을 과시하는 선전 무대이고, 변혁의 상징 후진타오는 '중국의 새로운 얼굴'에 불과하다고 일찍부터 지적했다. 이들에게 없는 카리스마적 권위는 여전히 장쩌민이 가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예상대로 장쩌민은 이번 대회를 통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올랐다.
공산당은 당장(黨章)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나란히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을 올렸다. 또 관영 언론은 장쩌민을 전과 다름없이 권력 서열 1위에 올려놓고 있다. 당과 정부의 원로를 밀어낸 공백을 행정 경제분야 테크노크라트 모범생들로 메운 상황에서, 장쩌민은 현실 권력과 이념적 지도력을 함께 갖는 최고 통치자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이런 결과를 내다본 외부 언론도 평가는 엇갈린다. 권력 교체기마다 음모와 파벌 싸움을 거듭한 전례를 탈피한 것을 평가하면서도, 밀실 결정의 비민주성을 탓한다. 또 체제 안정과 개혁 수행을 위해 장쩌민의 후견 역할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권력욕을 들먹이는 분석이 겹친다. 천명(天命)으로 천하를 다스린 천자는 죽어서야 권력을 놓은 중국적 전통이 마오와 덩까지 이어진 역사에 빗대 '황제는 은퇴하지 않는다'고 냉소하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잡다한 해석만으로는 오늘날 중국의 모순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중국 사회는 무모한 대약진 운동과 문화 혁명으로 '10년 대란'(大亂)을 초래한 마오쩌둥을 여전히 수 천년 봉건적 굴레에서 인민을 해방시킨 거인으로 기억한다. 또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민주화 요구를 억누른 덩샤오핑을 수 천년 빈곤을 벗어나는 경제 개혁의 토대를 마련한 위인으로 떠받든다. 이런 사회에서 장쩌민은 대중이 공산당의 권위를 계속 인정하는 대가로 경제적 복지를 약속하고, 이를 훌륭하게 이행한 지도자다. 그 것이 다시 그를 카리스마적 지위에 올려놓은 바탕일 것이다.
중국은 서구가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룬 시장 경제와 사회 안전망을 불과 한 세대 만에 건설했다. 그리고 다음 30년 안에 중진국에 이른다는 목표다. 번영과 복지를 향한 13억 중국인의 이 새로운 장정(長征)에 공산당 통치는 편리한 탈것, 쓸모 많은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이 추대하는 '종신 황제'를 무리없이 수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역사적 변화를 평가하는 데, 서구적 잣대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장쩌민은 중국인들이 천하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황제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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