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책선거 2002](12) 문화정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책선거 2002](12) 문화정책

입력
2002.11.20 00:00
0 0

넓은 의미에서 삶의 방식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는 우리가 '어떤 삶을 바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를 제기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가 일반적으로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을 당면 과제로 한다면, 문화는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비전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5일 근무제의 확산, 소득 수준의 향상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시키고 있다. 이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제한된 문화 체험에 그치지 않고 문화를 능동적으로 향유하고 더 나아가 문화 생산자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주요 대통령 후보들의 문화정책을 검증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국민의 여가 시간을 강제하거나 주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방식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의 의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공약 검증 기준

문화를 삶의 방식이라 할 때 문화에 대한 인식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가 처한 특수한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놓여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각 후보들이 제시한 우리 삶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을 살펴봤다.

둘째, 이러한 비전에 부응해 일관성 있고 구체적인 문화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는가를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정책들이 과연 집행 가능한지를 점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각 후보 진영이 제시한 문화 정책을 살펴보면 현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특정한 문화 사안들에 대해 관심만 표명했을 뿐, 문화 전반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요즘 계속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북핵 문제, 대 이라크 전쟁, 대선 후보 단일화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현안과 경제·사회 부문의 주요 관심사에 밀려 문화 부문에 대한 후보들의 인식은 무척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

이회창 후보는 문화 부문에서 진보적 정책을 추구한다고 밝힌다. 그는 "즐기는 문화, 감동을 주는 문화, 함께 하는 문화"를 문화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하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문화 인프라 구축(또는 확충), 문화 관련 예산의 대규모 확충, 문화산업과 연관된 정보통신(IT) 산업 육성 등이다. 그리고 문화 여가 콘텐츠 개발 및 보급의 활성화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남북 문화교류의 강조, 그리고 문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기능 강화 등의 공약은 시의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럴 듯한 정책을 동시에 제시했기 때문에 그 중에 어떤 것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중앙과 지방 문화의 격차 해소는 IT를 비롯한 문화산업 정책의 강조와는 소원한 사안으로 보인다. 문화 인프라의 확충도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내용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함께 제시됐을 때 빛을 발할 것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는 결국 인간사의 다른 영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김대중 정부가 좌파적 개혁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을 국가 혁신의 초점으로 삼는 이 후보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대북 문화협력 강화나 서민들의 여가시간 활용이라는 측면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현재의 상황은 '중상주의적 세계화'이므로 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어떻게 스크린 쿼터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한다는 '포괄적 실용주의'로 어떻게 경제 논리에 맞서 문화 예산의 확충을 이뤄낼 수 있을지,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문화 부문에서는 진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등도 확실하지 않다.

■노무현 후보

노무현 후보는 이 시대를 압축적 근대화와 민주화에서 비롯된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시대로 규정, 훨씬 깊이 있는 역사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유산들을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 즉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지향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러한 나라의 구성 요건의 하나로 '매력적인 환경과 문화가 함께 하는 나라' '성장·분배·환경이 함께 가는 문화국가'를 제시하고 있다. 문화 발전이 곧 사회 발전이라는 인식 아래 자율적 문화, 문화적 가치의창출, 재원 확충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적 이념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 그러한 이념이 구체적인 정책에서 어떻게, 또 어떤 우선순위로 반영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노 후보가 제시한 문화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의 내용은 문화시설 확충, 국민의 문화 접근권 확대, 문화산업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문화 영역간 연계 체계 강화,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 등 문화 인프라 확충의 중점 추진, 스크린 쿼터제 유지 등이다. 다른 후보들의 정책과 대동소이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어 보인다. 다만 방어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 세계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문화 정책에 적용된다면, 문화적 측면에서의 국제 교류와 남북 교류는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몽준 후보

정몽준 후보는 문화 부문의 '주요 정책 방향'으로 순수문화예술의 발전 기반 확충,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문화 콘텐츠 개발, 문화 유산의 보존 관리시스템 구축, 관광 인프라 확대를 통한 관광산업의 진흥, 생활체육 환경의 확대와 스포츠 산업의 발전 기반 조성,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청소년 정책 추진, 각 고장 고유의 향토문화 발굴 지원, 서울-지방간 문화향유 격차 해소를 위한 세제·재정 지원 확대 등을 내걸고 있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지원은 다른 후보들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으나, 이에 더하여 청소년 문화나 생활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정 후보는 문화를 이끌고 갈 비전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위에서 나열된 정책들의 우선 순위나 정책 시행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일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은 정책의 배경이 되는 철학이나 이념일 것이다. 정 후보가 정치 노선으로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문화 정책들 역시 많은 부분 경제 논리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영길 후보

권영길 후보는 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에 기반한 문화 정책의 철학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정책 기조의 전환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민주적이고 반서민적인 문화 부문 정부 기관들의 구조와 기능을 개혁하고, 그에 관련된 문화 관련 법률들의 폐지나 개정을 약속하고 있다. 모든 문화 부문에서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여 관료 중심의 문화 행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특히 생활체육을 강조하고 개발 중심의 관광 산업을 문화권, 환경권에 기반한 문화관광으로 바꾼다는 공약은 특기할 만하다. 권 후보의 문화정책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관치(官治) 중심의 문화정책을 뒤집어 엎을 수 있을 것 같으나, 각 문화 부문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에 급급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 실현 가능성이 또한 의심스럽다.

■총평

각 후보들은 문화 부문에서의 여러 현안들을 언급하고 있으나 왜, 어떻게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 없이 정책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발표된 각 후보들의 문화정책과 공약이 서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문화 콘텐츠나 IT 산업의 지원, 그리고 문화와 관광의 연계 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기에 언급하는 것일 뿐, 문화적 특성 자체에 대한 성찰은 미흡하다. 특히 한나라당의 정책이 그런 문제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고, 국민통합 21도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민주당은 문화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정책의 제시에서는 미흡한 편이다. 민주노동당은 문화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급급하여 체계적인 문화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각 후보들은 국민이 주5일 근무 확산 등으로 늘어난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국가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문화 인프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확충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 의식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 외에도 대중예술의 지원 문제, 공영 방송의 독립성과 그 역할의 문제, 청소년 문화 문제와 그와 관련된 세대간 문화 격차 해소, 노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들의 여가 활용 지원 방안 등을 보다 진지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또 모든 후보가 현재 정부 총 예산의 1%를 간신히 넘는 문화 예산을 2%대까지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문화 자체의 의의를 먼저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늘어난 예산도 그저 경제 논리에 의해 집행될 것 아닌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종환 (吳宗煥)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 학사 및 석사

·미국 남일리노이대 철학 박사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 교수

·서울대 예술문화연구소 소장

■핫이슈 / 문화개방·표현의 자유 확대

문화 부문은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공약에 대한 감시와 평가가 가장 활발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지난달 문화 부총리 신설 등을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공개 촉구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개혁시민연대 21개 문화단체는 각 후보들이 회신한 정책질의서 답변 내용을 평가중이다. 이들에 따르면 공약이 대체로 엇비슷해 변별성을 찾기 어려웠으나, 세계무역기구(WTO) 양허요청안 철회 등 문화 부문 시장개방, 국가보안법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의 폐지 및 개정에 대한 견해에서는 시각차가 뚜렷하다.

문화 단체들은 정부가 6월 다른 나라에 요구하는 문화 개방 폭을 담은 양허요청안을 제출한 데 대해 "미국등의 국내 시장 개방 압력에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해왔다.

이들은 더 나가 "문화를 일반 상품과 동일한 자유무역 대상으로 취급할 경우 특정 국가의 문화 정체성과 세계적 문화 다양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유럽처럼 영상물 등 핵심 문화 분야를 시장 개방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요 대통령 후보들은 미국과 통상 마찰을 빚어온 '스크린 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제도)는 계속 유지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으나, 양허요청안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 했다.

권영길 후보는 문화 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완전 철회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의료 환경 등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은 교역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노무현 후보는 "문화 정체성,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반면, 이회창 후보는 "재고할 부분이 있다"고 답변했으나 "국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라는 수식어를 단 것으로 보아 개방의 불가피성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인상이다. 정몽준 후보는 아예 답변서를 보내지 않았으나 문화 개방 역시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으로 추정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개폐에 대한 견해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후보는 보안법은 안보상 이유를 들어 현행 유지를, 청소년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등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노 후보는 고무찬양 등 보안법의 독소 조항을 개정하고, 다른 법률도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모두 고치겠다고 밝혔다. 권 후보는 보안법 완전 폐지와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각종 법률의 문제 조항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정책을 만든 사람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문화예술 정책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약개발팀의 작품이다. 공약개발위원인 성기조(成耆兆) 전 교원대교수, 조희문 상명대 교수가 문화예술 전반에 대해 큰 틀을 짰고, 지난 달 중순 이 후보의 특보로 임명된 신현웅(辛鉉雄) 전 문화관광부차관, 김효종 추계예술대 교수가 공약개발팀의 정책 대안들을 평가, 세밀하게 가다듬었다. 신 전차관은 문화 전반과 체육 및 청소년 분야, 김 교수는 문화산업 및 관광 분야의 공약들을 집중 점검했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으로 예총회장 등을 지낸 신영균(申榮均) 의원, 영화배우 출신인 강신성일(姜申星一) 의원은 문화 예술계 인사와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활용, 대중문화 정책 입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실무 작업은 정경훈(鄭京薰) 문화관광 수석전문위원이 맡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진보적 문화계 인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조직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노문모)이다. 익히 노 후보 지지자로 알려진 문성근(文盛瑾), 명계남(明桂男)씨와 영화 '박하사탕'의 이창동(李滄東) 감독 등이 방송·연극·문화계의 인사들과 함께 문화계 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자문교수단의 이종오 계명대 교수, 문승현 경희대 교수 등 외부 교수단 10여명은 노 후보의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 했다. 당내에서는 정범구(鄭範九), 신기남(辛基南), 정동채(鄭東采) 의원 등 문광위 소속 의원과 이미경(李美卿) 선대위 문화예술 위원장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캠프에는 신낙균(申樂均)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 문화예술관련 단체장과 인기 연예인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가 포진해 있다. 정 후보도 문화·체육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정책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선거대책위원장인 신 전 장관은 오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개발을 진두 지휘하고 이성림(李城林) 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장도 문화계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 최근 문화연예 특보로 임명된 문장철(文章哲) CPM 문화연구소장과 가수 김흥국(金興國)씨는 정 후보를 지근에서 보좌하면서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21세기경영전략연구소장을 지낸 유몽희(柳夢熙) 부대변인은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6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약분석 및 평가 작업을 담당했다. 당무위원인 박남희(朴南姬) 경북대 미술학과 교수와 이영자(李英子)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도 공약개발에 도움을 줬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배성규기자 vega@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