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도 없고 화려한 세트도 없다. 선정적인 장면도 없다. 오히려 옛날 영화를 보는 듯 다소 촌스런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오전 8시 5분이면 안방의 시청자들을 어김 없이 불러 세운다. KBS 1TV 'TV소설-인생화보'(극본 홍영희, 연출 이상우)는 오전 프로그램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인기다. 지난 주 시청률은 전체 10위인 19%(TNS 집계)로 '대망'(SBS)이나 '장희빈'(KBS2) 보다 높다. 특히 지난 두 달 동안 60대 이상 여성 시청률은 30.6%로 전체 2위다.김내성(1909∼1958)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TV소설-인생화보'는 한국전쟁을 전후, 돈가방을 잃어버린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 한 가정과 돈가방을 주운 뒤 성공하는 한 가정의 명암을 대비한 드라마다. 눈에 띄는 대형 스타는 없지만 물장수, 찐빵 가게 등 50년대 풍물을 재현한 세트와 돈을 중심으로 운명의 명암이 엇갈리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중년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인생화보'는 전쟁 피난길에 전재산이 든 돈가방을 잃어버린 뒤 몰락한 정림이네와 돈가방을 주운 뒤 성공한 형우네 가족의 숙명적인 대립을 축으로 그려진다. 여기에 돈을 잃어버린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애림(김정난 분)과 정림(김지연) 자매,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신형우(이세창)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형식(송재국) 형제 이야기가 맞물린다. 돈을 주운 뒤 욕망의 화신으로 변하는 신용석 역의 한인수 등 중견 연기자들의 캐릭터도 뚜렷하다. 나레이터가 극중 중요한 장면에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들려주거나 주인공의 심정 또는 극중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점도 흥미롭다.
홍영희 작가는 "제목에서 풍기듯이 인생에 대한 따스한 시각이 주부층의 호응을 얻는 것 같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그는 또 "추리소설의 대가였고, '청춘극장' 등에서 젊은 감각을 발휘했던 김내성 원작의 힘도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작은 부산 피난 시절에서 끝나지만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서울로 올라가서 겪는 50년대말까지의 삶을 다룬다. 홍 작가는 앞으로 "형식과 애림이 맺어지면서 두 가족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일단 마음을 준 이후에는 열정을 다 하는 옛날식 사랑이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닐까요?"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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