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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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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보에 들어있을 때부터 푸른 바다를 보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죠. 삭막한 도시생활을 시작한 코흘리개 아이는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습니다.이유없이 훌쩍거리고 밥 먹는 것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 슬픔의 한 가운데엔 언제나 바다가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수평선이 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렸습니다.

부모님은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놓은 방법은 인천 앞바다였습니다. 당시 경인고속도로가 막 개통한 시기여서 인천 앞바다는 서울 사람들에게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흥분한 아이는 날짜를 꼽으며 바다에 가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천 앞바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아이가 보아왔던 바다와 인천 앞바다는 모습이 많이 달랐습니다. 푸른 파도도, 툭 터진 수평선도 없었습니다. 섬으로 둘러싸여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했습니다.

‘바다가 아닌 곳에 데려왔다’며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이후 바다에 대한 편견이 생겼습니다. 동해가 아닌 다른 바다는 무조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편견이 없어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업이 된 이후에는 과거의 편견을 무척 부끄러워합니다.

우리나라를 두르고 있는 삼면의 바다는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징이 있습니다. 동해는 힘차고 선명합니다. 거칠 것 없이 일자로 펼쳐진 수평선과 모래밭을 두드리는 파도는 속을 후련하게 합니다. 호연지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남해는 맑고 아름답습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보석처럼 펼쳐져 있고, 그 보석 사이로 푸른 물이 휘돌아갑니다. 마음까지 아름다워집니다. 서해는 서정적입니다. 넓은 갯벌과 그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어우러집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붉은 색으로 반짝거리는 갯벌의 모습은 시심(詩心)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울화통이 터지면 동쪽으로, 정신이 피폐해지면 남쪽으로, 분위기에 젖고 싶으면 서쪽으로 갑니다.

겨울바다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그러면 지금 가슴을 가만히 만져보세요. 마음이 원하는 바다를 골라 찬바람 속에서도 따스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죠.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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