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면 서해대교 바로 아래 위치한 평택항. 중국에서 배가 들어오자 300여 평의 국제여객터미널 입국장은 순식간에 '다이공(代工·보따리상)'으로 가득찼다. 이날 하선한 다이공은 240여 명. 그러나 중국산 참기름과 고추 등 농산물을 바리바리 실은 이들은 몇 시간 째 입국장 세관 검색대 앞에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강화된 세관 검사에 항의, 입국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핸드 캐리어(휴대품 가방)에 담은 고추 한 덩이 정도는 눈감아 주더니 요즘엔 국물도 없어. 매번 10만원씩 손해야." "이 짓 해서 아들 대학 보내고 유학까지 시켰다"는 7년차 다이공 신모(67·여)씨는 "뱃삯이 17만원인데 남는 게 없다"고 푸념했다.
올해 초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모은 돈 30만원을 들고 무작정 배를 탔다는 한 중년 남자는 "벌써 3달 넘게 돈 쳐 박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야 있겠느냐"며 "이러다간 거리로 다시 나앉게 생겼다"고 처지를 호소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민간무역의 첨병으로 외화벌이에 일익을 담당했던 다이공들이 세관이 검색을 강화하자 아우성이다. 1인당 80㎏이던 휴대품 면세허용 중량이 2000년 10월 50㎏으로 준데다 세관이 올 8월부터 농산물 품목 당 5㎏ 이하인 통관기준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정을 봐줬던 핸드캐리어까지 무차별 검색을 하고 있다.
"IMF직후만 해도 정부에서 다이공을 장려했어요. 실업자는 넘치지, 노숙자는 늘지 대책이 있나요. 배라도 타라고 한 것 아닙니까." 다니던 무역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다이공이 된 39세의 한 가장은 "당시는 한 달 긁어 모으면 100만원 벌이는 됐는데 이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고 털어 놓았다.
새벽으로 접어들자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다이공들의 시위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거나하게 취한 이들은 세관 직원에게 시비를 걸고 낯선 기자에게 드잡이할 태세다. "언론에서 우리를 다 밀수꾼으로 몰아가니까 세관이 저 난리여. 집도 절도 없이 광활한 중국 땅을 개척한 우리는 애국자여!" 곳곳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농산물을 수집상에게 넘기고 오후에 중국으로 출발하는 배에 다시 타야 하는 이들에게 이날 시위는 한 다이공의 말처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하루 장사를 포기하는 도박이다.
이날 시위는 평택항 개항 이래 최장 기록을 세운 뒤 다음날 오전7시 막을 내렸다.
전국적으로 4,000여명이던 다이공의 숫자는 올해 1,400여명으로 줄었다. 지난해부터 평택항을 근거로 활동하던 다이공의 숫자도 5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면면은 "망해서""잘려서" 배를 탄 실직자부터 구걸해서 모은 돈으로 배를 탄 노숙자, "현지와 끈이 있는" 재중 동포나 화교, "먹고 살기 위해서" 나선 아주머니, "용돈이나 벌려는" 노인, "별이 몇 개인 줄 알아"라며 으름장을 놓는 전과자까지 다양하다.
"2년 전만 해도 평택항 주변에 다이공 시장을 세운다고 난리더니 쏙 들어갔어"라는 한 다이공의 말에서 이들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한때 호시절을 즐겼던 다이공들에게 최근 상황은 밀려오는 추위보다 무섭다.
다이공의 처지가 위축된 것은 이들이 다루는 물품과도 무관하지 않다. 유행이 지났거나 중소기업 제품이라 한국에서 팔리지 않는 화장품, 시계, 나일론 옷 등 공산품과 라면, 과자류 등 생활용품을 중국에 팔고 고추 참깨 참기름 등 값싼 중국 농산물을 들여와 이중으로 이문을 남겼다. 하지만 마구잡이 중국 농산물 유입이 우리 농업을 망치는 주범으로 찍히면서 그 통로의 하나였던 '개미군단' 다이공들이 찬바람을 맞은 셈이다. 우리 세관의 단속 강화로 다이공에 의한 중국 농산물 한국 유입이 막히자 중국이 보복 조치로 우리 공산품의 중국 유입까지 막고 있어 이중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 다이공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우더니 이젠 우리 농업을 망치는 주범으로 몰아갑니다. 컨테이너에 대량으로 싣고 오는 농산물에 비하면 우리가 가져오는 양은 '새 발에 피' 아닙니까." 한 잔 걸친 4년차 김모(52)씨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여기 모인 사람들 이 짓 못하면 다 깡통차요. 그러면 정부가 실업 대책 세워줍니까."
중국으로 원단을 나르는 중년의 다이공도 "우리가 농산물을 막으니까 중국에서도 한국 상품 반입을 무조건 막아요. 국내에선 쓰레기 취급 받는 중소기업 제품을 100원에 팔고 10원짜리 중국 농산물을 들여와 국가에 이익을 남기는 게 우리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평택항에 첫눈이 내린 13일 이틀 전 시위를 했던 다이공들이 다시 배를 타기 위해 여객터미널에 모여들었다. 다이공들은 바닷길이 일찌감치 열린 인천항보다는 그나마 평택항이 낫다고 했다. "세관 단속이야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지만 거긴 원래 있던 다이공들의 텃세가 심해." 막내 아들 대학 보낼 때까지만 보따리상을 할 생각이라는 중년 여성은 "중국은 롱청항이 다른 곳보다 단속이 덜한 편이라 사탕 몇 봉지라도 몰래 들여가 팔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오후5시 배 시간을 기다리던 다이공들은 중국에 팔 물건들을 담은 가방을 짊어지고 하나 둘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애들 눈치 보기 싫고 배 타는 게 마약이랑 똑같아서…" 한 노인은 내뱉듯 한 마디를 던지고 안으로 사라졌다.
/평택=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김재현기자
■"물건 유통경로는 아무도 몰라"
중국의 롱청(榮成)항을 오가는 국제선 카페리 '대룡호'(1만8,000톤급)가 평택항에 닻을 내리는 월·수·금 오전이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주차장은 경기 충남 충북 등지에서 온 소형 화물 트럭과 콜밴, 승합차량이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은 다이공의 농산물을 모으는 수집상이다. 세관을 빠져 나온 다이공과 수집상의 직거래는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저울로 무게를 달고 전자계산기로 환율을 따지고 나면 바로 현찰이 오간다. 수집상들의 차량 부근엔 중국산 참기름 통과 농산물 꾸러미가 가득 쌓인다. 대부분 배에서 생활하는 다이공은 자신이 들여온 농산물의 유통 경로를 잘 모르거나 함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통 거점인 수집상들도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는 게 관례. 한 수집상은 "꼬치꼬치 캐묻다간 봉변 당하기 십상"이라고 충고한다.
최근 가장 돈 되는 농산물은 고추. 다이공은 중국에서 1㎏에 20위안(우리 돈 3,000원)인 중국산 고추를 수집상에게 6,000∼7,000원에 넘긴다. 인천에서 왔다는 한 수집상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이공에게서 모은 농산물은 1㎏당 200∼500원 정도의 이문을 남긴다"며 "세관 단속 때문에 물량이 줄어 인건비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세관의 검색이 강화하면서 양주 담배 등 면세품도 다이공의 주요 수입원이 됐다. 농산물 수집상 주위에는 양주와 담배만 전문적으로 모으는 면세품 수집상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한 중년 여성은 "남대문 시장과 알고 지내는 유흥업소에 넘긴다"고 귀띔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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