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금융 시스템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채 대형 은행들이 심각한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부실채권 처리 방안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금융개혁 프로그램의 구체안이 혼선을 빚으면서 이러한 은행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은행주가 주도하는 주가하락
1993년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최저가인 8,200∼8,300엔대에서 연일 최저가를 경신 중인 닛케이(日經) 평균주가의 하락은 대형 은행주의 하락이 주도하고 있다.
9월 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2차 내각이 과감한 부실채권 처리 방침을 내걸고 출범한 이후 약 50일 사이에 UFJ 홀딩스 그룹은 69%, 미즈호 홀딩스 그룹은 58%씩 각각 주가가 하락했다. 미쓰비시도쿄(三菱東京) 파이낸셜 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 은행 주가도 18일 올들어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이들 일본의 4대 금융그룹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기 짝이 없다.
대형 은행주의 하락은 이들 은행으로부터 과잉채무를 안고 있는 상사·건설·부동산·유통주의 하락을 부르고 다시 이들 하락 기업의 주거래 은행이나 기업주를 다량 보유한 은행주의 하락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은행 보유주 매입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일은)은 19일 금융 시스템 강화를 위해 은행 보유주 매입을 29일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4대 금융그룹과 지방은행 등 10여 개 은행의 보유주식을 내년 9월말까지 2조엔 어치 가량 매입해 주가하락으로 인한 은행의 리스크 부담을 대신 떠안는다는 세계에 전례가 없는 조치다.
문제는 이 이례적 조치가 결정됐던 9월 말 9,300엔대이던 닛케이 평균주가가 현재 1,000엔이나 떨어져 은행들은 보유주를 일은에 매각할 경우 거액의 매각손이 발생해 당장 자기자본 감소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은에 매각하지 않으면 8,000엔 붕괴도 점쳐지는 주가하락 속에서 보유주 평가손으로 은행경영은 점점 악화할 것이 분명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구조조정 찬바람
은행들은 잠시 지연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미국식 회계기준 적용 등을 통한 부실채권 처리와 은행 개혁이 결국은 닥쳐올 것으로 보고 인원과 점포 삭감 등 살아남기 위한 대대적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다. 미즈호 그룹은 전체 3만 명인 직원을 2005년말까지 2만 5,000명으로 줄이려던 당초 계획을 2년 앞당기고 2,000∼3,000여 명을 추가로 정리할 방침이다. UFJ 그룹은 올해 3월 말 현재 2만 4,000여 명인 직원수를 2005년 3월 말까지 1만 9,750명 이하로 줄일 계획이다.
주요 은행들은 또 점포수도 각각 50∼200여 개씩 줄이고 아직도 다른 업종에 비해 너무 많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급여도 대폭 삭감할 예정이다.
한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9일 사설에서 "아직 은행 개혁 프로그램의 '작업공정표'도 나오지 않았는데 시장의 혼란이 앞서가고 있다"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메가뱅크의 주가하락은 금융행정이 잘못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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