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5) "153"의 의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모나미 인생 송삼석(5) "153"의 의미

입력
2002.11.20 00:00
0 0

이 땅에 첫 선을 보인 국산 볼펜에게 나는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국제산업박람회에서 처음 본 후 1년여만에 내 손으로 직접 볼펜을 만들어내다니‥. 나는 가슴 뿌듯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더욱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고상하고, 부르기 쉽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없을까….나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 고민해야 좋은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직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모나미 볼펜'을 추천했다. 기왕 생산·판매중이던 '모나미 물감'이 큰 인기를 얻고있는 데 굳이 다른 이름을 찾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직원들 생각에 동의는 했지만 난 허전했다. 볼펜 이름에 뭔가 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다. 일본인에게 통사정을 해서 기술을 전수 받아 갖은 고생 끝에 완성시킨 볼펜이 아닌가.

다시 아이디어 회의를 소집했다. 내 뜻을 들은 직원들이 다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1963년에 태어났으니 '모나미 1963', 5월1일에 세상 빛을 봤다고 '모나미 501', 행운이 따르라고 '모나미 77'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없었다. 그 때 한 남자 직원이 "모나미 153 어떻습니까"라고 툭 내뱉었다. "153, 153, 153이라‥." 153을 반복해 발음해 보니 부르기도 쉬웠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도대체 153이 무슨 뜻인가"고 묻자 되돌아온 그 직원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화투 좋아하지 않습니까. 1, 5, 3을 더하면 9죠. 화투놀이에서는 9, 즉 '가보'가 가장 높지않습니까. 그리고 225, 234, 135 이런 것보다는 153이 발음하기 좋구요."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혀를 차는 이도 있었고, "고작 내놓은 아이디어가 화투냐"고 핀잔을 주는 여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과 머리속에서는 계속 '153'이라는 숫자가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153'이 내겐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내가 손으로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짓자 영문 모르는 직원들은 아이디어를 낸 남자 직원에게 눈총을 줬고, 그 직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릴 뿐이었다. 다시 회의를 진행하려고 하는 순간 난 뭔가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이 휘둥그래진 직원들을 뒤로 한 채 내 사무실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곤 성경을 찾아 요한복음을 폈다.

'예수께서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중략) 육지에 올라오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너무 놀라웠다. 요한복음 21장 11절에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의 수가 그 직원이 말한 것과 같은 153마리 아닌가. '153'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따르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였다. 또 예수님의 말씀, 즉 순리에 따라 얻어진 것들은 베드로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처럼 뒷탈이 없어 걱정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난 지금껏 그런 정신으로 기업을 경영해왔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처럼 기업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 하나님은 내게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기업인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상도(商道)를 일깨워주셨던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