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재건축 안전진단 업무를 각 구청에 위임키로 했다는 소식은 재건축 허가 남발을 눈감아 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 '표'에 민감한 자치 구청장들이 재건축 민원을 외면할 수 없어 허가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본청이 허가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시책이다. 그런데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옛날 제도로 돌아가겠다는 느닷없는 결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재건축 허가 남발로 인한 투기열풍과 부동산값 폭등으로 망국론까지 나온 것이 엊그제 일이다. 그 광풍을 재우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 허가권 환수, 안전진단 기준 강화, 용적률 감축 등의 방안을 약속한 것이 8월이었다. 9월 말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국회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재건축 대상 건축연한을 현행 20년 이상에서 40년 이상으로 강화하고, 재건축 요건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재건축 허가의 핵심 사항인 안전진단 업무를 구청에 맡긴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서울시는 "재건축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고, 구청장협의회 요청도 있어 고유권한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청장들의 압력에 못이긴 결정이라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결정이 일으킬 불을 보듯 뻔한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올가을 국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 3월까지 각 구청에 접수된 562건의 재건축 신청 가운데 안전진단 대상의 99%가 재건축 허가를 받았다. 이런 허가남발의 실상을 밝혀가며 재건축 허가 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서울시가,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방침을 180도 선회한 것은 너무 일관성 없는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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