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단일화 방식에 대한 완전 합의가 이뤄진 지 하루 만에 합의 자체가 깨질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민주당과 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이 합의한 여론조사 세부 방식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 불씨를 제공했다.
국민통합 21은 18일 오전 "여론조사 방식 공개로 한나라당 지지층의 역선택이 우려된다"며 여론조사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재협상 요구에 소극적으로 임한다고 판단한 통합21 단일화 추진단은 이날 저녁 사퇴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초강수로 대응했다. 민주당은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이 같은 통합21측의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여론조사 방식 조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중앙선관위가 후보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1회로 제한한 것도 양측 합의의 기본틀을 흔들었다. 양측은 전날 협상에서 "여론조사에 앞서 TV토론을 3,4 차례 실시하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통합21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배경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한나라당 지지층의 역선택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통합21 관계자는 "단일화 합의 이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층 일부가 교란을 하더라도 0.1% 포인트 차로 승부로 가르는 여론조사에서는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서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역전돼 3위로 밀려난 것도 재협상 요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합21측은 단일화 합의 직후부터 범여권의 조직들이 노 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잘못 말려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신 때문인지 통합21 내부에서는 단일화 파기 불사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 후보측의 진의가 단순히 재협상을 노리는 것인지, 아니면 단일화 합의 파기쪽에 있는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사퇴 이철 통합21단장
―왜 사퇴하나.
"여론조사 방식이 공개되면 왜곡 가능성이 높은데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데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사퇴했다."
―추진단이 사퇴하면 재협의는 누가 하나.
"당 후보단일화 대책위에서 별도창구를 만들 것이다. 현재로는 협상창구가 없다."
―단일화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합의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왜곡을 막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을 찾자고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고 시한이 촉박한 데 민주당측이 협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데 절망감을 느낀다."
―단일화 합의가 깨질 수도 있나.
"합의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일화 합의 파기는 동반자살이자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꿈에도 상상하기 싫다."
―민주당이 재협의를 계속 거부한다면.
"민주당도 합의파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협의가 안 되면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鄭측 "당장 재협의를" 초강수
국민통합21은 18일 여론조사 방식의 유출 사태를 문제삼으며 단일화 추진단의 사퇴, 재협의 요구, 민주당측을 비난하는 심야 논평 발표 등의 격한 동선(動線)을 그렸다. 특히 이날 밤 12시 직전 김민석(金民錫) 선대위 총본부장은 "합의문의 언론공개는 양측의 신뢰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며 "단일화를 위해서는 기본 신뢰관계의 회복이 선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날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호남 방문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 언급은 정 후보의 교감 하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21의 이상 기류가 나타난 것은 일부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난 이후부터다. 단일화 합의 직후인 지난 주말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의 지지도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7일 저녁 배달된 조간신문 가판에 비공개하기로 했던 여론조사 방식이 일부 보도되자 이철(李哲) 단일화추진단장, 김행(金杏) 대변인 등은 심야 대책 회의를 가졌다. 이어 18일 아침 조간신문에 여론조사의 구체적 방식이 거의 다 소개되자 통합21은 일일전략회의에서 대책을 논의, 재협의를 촉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철 추진단장은 "추진단 사퇴는 정 후보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통합 21의 초강수는 정 후보의 의중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정 후보도 "단일화 합의 정신이 중요한데 이를 훼손시키면 안 된다"고 민주당측을 향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김행 대변인은 "민주당 단일화추진단의 홍모씨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P사와 H사를 여론조사기관 검토 대상으로 갖고 왔었다"며 "그 기관들은 결국 채택되지 않았지만 민주당측의 저의를 의심케한다"고 말했다.
/배성규기자
■盧측 "혹시 판깨지나" 초긴장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측은 여론조사 방식 등의 유출 파동으로 국민통합 21측이 단일화 재협의를 요구한 데 이어 단일화추진단 사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이러다가 판이 깨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민주당 단일화추진단 이해찬(李海瓚) 단장은 이날 밤 긴급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를 소집하는 한편 통합21측의 진의 파악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단장은 회의 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의구심을 표명했다. 이 단장은 그러나 단일화 파기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통합21측이 합의의 틀을 깨지 못할 것으로 보고 통합21측에 합의 준수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재협의 요구에 미온적이라는 통합21측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여론조사 기관 변경 및 여론조사 실시시기 조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통합21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선관위가 TV토론을 1회만 허용했기 때문에 여론조사 실시시기 조정은 어차피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이 단장은 그러나 통합21측이 여론조사 설문 방식의 조정을 요구할 경우에 대해선 "이미 양측이 명확하게 합의했고 변경해야 할 사유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선대위 관계자는"통합21이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보는 본선경쟁력 쪽으로 문항을 바꾸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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