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역사는 공산주의의 등장과 퇴영의 역사였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후 공산주의는 빠른 속도로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의 팽창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1949년 공산당 정부가 수립됐고, 북한에서도 김일성(金日成)이 정권을 잡았다. 머지않아 베트남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유라시아 대륙의 공산주의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해양의 자본주의가 극한 대립하는 형태를 갖췄다.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교차하는 길목이었다. 공산주의 진영의 종주국은 소련이었고 자본주의 진영의 종주국은 미국이었다. 미·소의 대립은 냉전으로 차갑게 점화했다. 결국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권이 해체되면서 20세기 역사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냉전 종식은 새로운 형태의 대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1세기 세계사 주역은 미국과 중국
21세기 세계사의 주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주장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이 바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그는 72년 미·중 데탕트를 실현시킴으로써 국제관계의 역학구도를 바꿔 놓았고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기초를 쌓았다.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2대 1의 힘겨운 경쟁을 해야 했던 미국이 이제는 거꾸로 중국과 한편이 되어 소련을 견제하고 몰아붙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소련은 더욱 군비증가에 열중하게 되었고 결국 그 많은 무기들을 품에 안은 채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회주의의 무덤을 딛고 키신저는 노벨 평화상을 탔다. 중국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전략가라 부른다. 그러나 키신저는 중·소 분쟁을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맞도록 역이용할 줄은 알았지만 미·중 관계를 어떻게 가꿔나갈지는 몰랐다. 그는 냉전적 전략의 천재일지 몰라도 탈냉전 시대의 전략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미·중 관계는 많은 애매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애매성 때문에 양국 간에는 갈등과 긴장이 항시 떠나지 않는다. 애매성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대만 문제다. 미국은 대만의 안보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지고 있다.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이 군대를 파견해서 대만을 지켜줄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대만이 망하는 것을 미국이 방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의 갈등 요소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을 포기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 왔지만 이것은 주권에 관련된 문제라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주권 문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무력사용의 포기를 선언할 경우 대만이 독립선언을 강행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독립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 억지수단이 무력사용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2개 국가론을 주장했을 때나 2000년 대만 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취임했을 때 중국이 무력사용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만 문제의 애매성은 현대 무기체계가 갖는 애매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양해하지만 방어의 범위를 넘어 공격용 무기를 판매하거나 일정 수준을 넘어 과도한 양의 무기를 판매하는 데는 반대한다. 문제는 현대 전략에서 방어용 무기와 공격용 무기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반대할 수도 있고 묵인할 수도 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면 중국은 대만 카드를 내 보인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장군 멍군이 계속되는 것은 양국이 갖는 이중적이고 애매한 관계의 성격 때문이다.
미·중 관계의 애매성은 양국의 전략적 이해 구도와도 직결된다. 중국은 미국을 협력 동반자이자 잠재적 적대국으로 간주한다. 중국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근대화 계획의 성공을 위해 도움을 받고 협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가가 미국이다. 지난해 288억 달러에 달했던 무역흑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중국에게 최대의 시장이다. 투자나 기술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중국은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 이중 4분의 1 이상을 미국 회사들이 투자했다. 무역과 투자는 곧 기술이전을 뜻한다. 시장을 기술과 교환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협력·안보상 경쟁 관계
중국이 미국에게 큰 경제협력 파트너이긴 하지만 모든 관계가 협력적일 수는 없다. 양국 간의 경제 관계는 분명히 상호의존적이지만 그것은 비대칭적 의존 관계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의 협조가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도 절대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 통일로 가는 지름길은 워싱턴을 경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국제적 부상을 견제하는 잠재적 적대세력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할 뿐 아니라 가끔 공식적으로도 그런 입장을 내보인다. 중국 정부 대변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규탄하는 강국정치나 일방주의, 패권주의는 모두 중국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경계심과 두려움을 바닥에 깔고 있다. 물론 중국의 대미 경계심은 중국 스스로 갖고 있는 본연적 약점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미국과 관계없이 안보상 취약점이 많은 나라다. 중국은 14개 국가와 22만㎞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국경 분쟁도 많았고 크고 작은 군사충돌 역시 적잖게 경험했다. 62년 인도와의 전쟁, 69년의 소련과의 무력충돌, 79년의 베트남 전쟁 등이 그 예다. 이들 국경지대는 대부분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정치적 민감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현상은 국토가 넓고 민족 구성이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배경은 중국의 종합 국력이 아직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중 관계는 중국이 근대화에 성공해 안보 불안감이 크게 줄고, 정치적으로 중국의 다원화가 성숙될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와 밀접
미·중 관계의 이중성이나 애매성은 한·중 관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간주한다. 직접적으로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의 주요 상대국이자 전략적 이웃이지만 미국을 통해 보면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관계가 나빠지면 중국의 대한 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가 미·중 관계의 그늘에서 벗어 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앞으로 상당 기간은 비현실적이다. 미·중 관계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21세기 우리 외교가 당면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정 종 욱 (鄭鍾旭) 아주대 사회과학대 교수
■차이나 핸드북 / 美-中 3개 성명 "대만 문제" 근간
미·중 관계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당주석과 역사적인 회담을 가짐으로써 적에서 친구로 돌아섰다. 냉전기 미국에게 대 소련 견제의 동반자였던 중국의 전략적 가치는 탈냉전과 함께 크게 희석됐다.
전략적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냉전 시절 발표한 공동성명의 영향을 받는다.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3개의 성명은 상하이 공동 코뮤니케(72년 2월 28일)와 미·중 수교 공동성명(78년 12월 16일), 8·17 공동성명(82년 8월 17일)이다.
3개의 공동성명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내용은 대만 문제다. 상하이 코뮤니케에서 양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대만 관계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수교 공동성명에서는 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에 동의했다. 양국은 또 이같은 전제 아래 미국이 대만과 문화, 경제를 포함한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합의했다.
8·17 공동성명에는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를 억제하려는 중국의 요구가 관철됐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대만에 대한 공격용 무기 판매금지와 함께 점진적인 무기수출 감축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미·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79년 미 의회가 미·중 수교(미·대만 단교)에 맞춰 결의안의 형태로 마련한 '대만 관계법'이다. 행정부에 구속력을 갖는 대만 관계법은 미국의 대만 안보 의무를 명시함으로써 무기 판매의 여지를 제공했다. 3개 공동성명과 대만 관계법은 미-중-대만 관계의 급속한 변화를 제어하는 균형추 역할을 해 왔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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